AI(인공지능)·반도체 패권경쟁 속에서 반도체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실적이라는 초호황을 기록 중이다. 반도체기업들이 벌어들인 막대한 '초과이익'을 놓고 사회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학계와 경제계 전문가들은 지금의 초호황 이익은 결코 '남는 돈'이 아니며 미래 치킨게임에서 생존하기 위한 핵심재원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나섰다.
산업통상부 주최로 15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AI 시대의 기업투자와 노동의 미래' 토론회에서 경제계 전문가들은 반도체산업의 극심한 '사이클 변동성'을 경고하며 이익의 유보와 재투자를 주장했다. 불과 3~4년 전인 2022~2023년 업황악화 당시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규모의 적자를 기록하고 삼성전자 주가가 급락한 아픈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토론회 발표자로 나선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변동성이 크고 투자실패 위험성이 높은 반도체산업 특성상 기업 내부자금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막대한 이익이 날 때 이를 미래 투자재원으로 활용해 앞으로 손실이 발생할 때도 설비투자(CAPEX)와 연구·개발(R&D) 투자를 중단 없이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치열한 기술·생산 경쟁 속에서 이윤이 갖는 '생존보장' 역할을 강조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반도체 호황기의 고이윤은 불황기에 자본을 소진하며 버틸 '완충재'이자 '보험료'에 가깝다"며 "독일의 키몬다와 일본의 엘피다 같은 글로벌 메모리 대기업들이 무너진 결정타는 결국 호황기에 충분한 현금 버퍼를 쌓지 못해 치킨게임 과정에서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제때 투자를 하지 못한다면 이들 기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또한 "글로벌 빅테크들과 사활을 건 패권전쟁을 벌이는 반도체산업에서 이윤은 슘페터적 의미의 '혁신의 보상'일 뿐"이라며 "이를 미래혁신에 즉각 재투자하지 않고 단기성과 배분에 소진해 버린다면 기업의 생존기반 자체가 순식간에 상실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노사교섭을 통해 성과급으로 사전에 확정 짓거나 배분하라는 노동조합의 요구는 상법 원칙과 주주자본주의 근간을 해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본부장은 "영업이익은 배당이나 세금 등 처분이 확정되기 전 단계의 이익으로 그 배분권한은 노사가 아닌 주주총회와 이사회 같은 회사 기관에 귀속된다"며 "손실위험을 감수하는 주주의 이익 배분권을 노사협상으로 침해하는 것은 자본시장 원칙을 훼손해 기업들의 투자유인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 이사 역시 "대법원 판례도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성과급의 임금성을 일관되게 부정하고 있다"며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어디에 배분할지는 경영진의 고도의 경영전략적 판단사항이며 노사간 교섭이나 파업 같은 실력행사를 통해 결정될 사안이 결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이겨레 민주노총 청년특별위원장 등 노동계 인사들은 "대기업의 초과이윤은 공급망 내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의 헌신이 결합된 성과"로 원청의 초과이윤 일부를 하청근로자 처우개선과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