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세고 수확량 예측…논에 들어간 'AI 조사원'

세종=정혁수 기자
2026.09.22 13:48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영상 기반 'AI 벼 생육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재식밀도·분얼수·출수기·수량 분석…조사 노동력 60% 이상 절감
-오는 2030년 전국 690개 지점 적용…재해 진단·다른 작물로 확대

고정형 영상 수집 장비/사진제공=국립식량과학원

벼가 제대로 뿌리를 내렸는지, 가지는 얼마나 뻗었는지, 이삭은 언제 패기 시작했는지 확인하려면 사람이 논에 들어가야 했다. 이앙부터 수확까지 월 2회씩 모두 아홉 차례, 조사 때마다 최소 2명이 필요했다. 폭염이 쏟아지는 한여름에도 생육 조사를 멈출 수 없었다.

앞으로는 논에 설치된 카메라와 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신해 벼의 하루하루를 기록한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은 벼 재배 현장의 영상을 AI로 분석하는 '인공지능 벼 생육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장 적용성과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이 시스템은 벼를 촬영하는 영상 수집 장비와 생육 상태를 판별하는 AI 모델, 분석 결과를 한눈에 보여주는 웹 기반 통합 플랫폼으로 구성된다.

사람이 정해진 날짜에 논을 찾아가 일부 벼를 조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동일한 지점의 영상을 매일 수집하고 생육 변화를 연속적으로 살펴보는 구조다.

벼 생육 모니터링 시스템/사진제공=국립식량과학원

최근 폭염과 집중호우 등 이상기상이 빈번해지고 병해충 발생 양상도 복잡해지면서 벼 생육 상태를 더 자주, 정밀하게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그러나 기존 인력 중심 조사로는 전국의 논을 촘촘하게 관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AI 시스템을 활용하면 원격·무인·비파괴 방식으로 벼의 생육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현장 방문 횟수와 조사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농진청은 생육 조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기존보다 60%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벼 포기와 가지 세고 출수기·수량까지 분석

국립식량과학원은 2023년부터 전국 도 농업기술원 19개소에 고정형 영상 수집 장비를 설치해 데이터를 축적했다. 지난해에는 설치와 이동이 간편한 이동형 장비를 개발해 시·군 농업기술센터를 포함한 86개소로 조사망을 확대했다.

수집된 영상 속에서 이앙 위치와 벼 잎, 이삭 등을 구분해 표시한 뒤 실제 조사 자료와 함께 AI에 반복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이렇게 개발된 모델은 단위면적당 벼 포기 수인 재식밀도와 가지 수인 분얼수, 이삭이 패는 출수기, 이삭 면적을 토대로 한 예상 수량 등을 분석한다.

현재 농진청이 제시한 모델 정확도는 재식밀도 97%, 분얼수 98%, 출수기 99%, 수량 분석 88% 수준이다. 특히 출수기는 하루 이내 오차로 판별할 수 있다. 농진청은 조사 지역과 학습 데이터를 늘려 생육 형질 분석 정확도를 99%, 수량 분석은 95%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영상과 분석 결과는 '벼 생육 모니터링 플랫폼'에 모인다. 담당자는 지역별·시기별 생육 상황과 초장, 분얼수, 피복도, 이삭 수, 예상 수량 등을 확인하고 연도별 변화도 비교할 수 있다.

다만 현재는 도 농업기술원에 설치한 고정형 장비의 자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초장과 이삭 수 등 일부 지표는 정확도 개선도 필요하다. 이동형 장비 연계와 지역 간 비교, 생육지표 변화 추이를 보여주는 시각화 기능도 앞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다.

◇일본·중국도 영상과 AI 활용…한국은 '전국 조사망 전환' 시도

해외에서도 AI와 원격탐사를 이용해 벼의 생육과 수량을 분석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일본 연구진은 자연 상태의 논에 고정형 카메라를 설치하고 시계열 RGB 영상을 딥러닝으로 분석해 벼의 출수기를 자동으로 추정하는 기술을 2019년 발표했다. 사람이 반복적으로 논을 방문해 이삭을 관찰하는 작업을 영상 분석으로 대체할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일본 농업·식품산업기술종합연구기구(NARO)는 드론으로 측정한 식생지수와 지상 센서 정보를 결합해 벼의 생육을 진단하고 목표 수량에 필요한 웃거름 양까지 계산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단순 관찰을 넘어 분석 결과를 비료 처방과 재배 관리로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중국에서도 여러 시기에 촬영한 드론의 RGB·다중분광 영상을 이용해 벼 수량을 예측하거나, 드론 초분광 영상과 머신러닝을 결합해 벼멸구 초기 피해를 찾아내는 연구가 진행됐다. 중국 광둥성 연구진이 2025년 발표한 벼멸구 조기 탐지 모델은 전체 정확도 85% 이상을 기록했다.

다만 국가와 연구마다 촬영 장비와 재배 환경, 분석 대상, 정확도를 계산하는 기준이 달라 수치만으로 기술 수준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품종과 지역, 기상 조건에서도 현재의 정확도가 유지되는지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앙 위치, 잎, 이삭 등 분석대상 영역 라벨링/사진제공=국립식량과학원

◇2030년 690개 조사 지점으로 확대

농진청은 현재 사람이 직접 벼 생육을 조사하는 전국 690개 지점에 오는 2030년까지 영상 수집 장비를 단계적으로 설치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벼에서 확보한 영상·AI 기술을 다른 식량작물로 확대해 작물 생육 조사 체계 전반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한다.

활용 범위도 생육 조사에 머물지 않는다. 국립식량과학원은 드론 영상에서 정상 구역과 피해 구역을 구분해 벼 쓰러짐과 벼멸구 피해 면적·비율을 필지별로 산출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향후 병해충과 기상재해, 생육 스트레스를 조기에 진단하는 모델까지 결합되면 AI가 조사 업무를 줄이는 수준을 넘어 농가의 의사결정을 돕는 도구로 발전할 수 있다.

결국 성패는 '볼 수 있는 AI'를 '쓸 수 있는 AI'로 만드는 데 달렸다. 연구기관의 조사 자료를 생산하는 시스템에서 나아가 농업인이 물 관리와 시비, 병해충 방제 시기를 결정하는 데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립식량과학원 김기영 기초식량작물부장은 "인공지능 벼 생육 모니터링 시스템은 기존 인력 중심 조사 방식을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하는 농업 분야 인공지능 전환의 핵심 성과"라며 "벼 생육과 수량 조사뿐 아니라 재해 진단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 연구 성과가 실제 농가 현장에서 쓰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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