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숫자를 세고, 농민은 한숨을 센다. 정책의 성과를 설명하는 정부의 언어와 농민이 살아가는 현실의 언어는 때때로 다른 세상에 속해 있다.
정부세종청사에선 조사 대상과 거래액, 청년농 선발 인원이 성적표에 오른다. 반면 들녘에선 내 땅을 지킬 수 있는지, 농산물 한 상자를 팔아 얼마가 남는지, 대출금을 갚고도 내년 농사를 이어갈 수 있는지가 더 절실하다. 같은 정책을 두고 이야기가 엇갈린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에 대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연출됐다.
농지 전수조사가 그랬다. 투기를 막고 경자유전의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는 취지는 옳다. 농지는 사고파는 재산이기 전에 먹거리를 생산하는 터전이다.
그러나 농촌에는 고령으로 직접 농사짓기 어려운 소유자도, 상속받은 땅을 당장 정리하기 어려운 가족도, 계약서보다 오랜 신뢰로 땅을 빌려 경작해 온 임차농도 있다.
일부 농민은 조사 이후 농지를 처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거래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물론 농지시장의 변화를 모두 조사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불법과 관행을 구분하는 기준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투기를 겨눈 조사가 생업의 불안으로 번질 수 있다. 정부가 비투기성 사안의 제도 보완을 약속한 만큼, 현장에서 그 경계가 분명하게 작동하는지 살펴야 한다.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도 마찬가지다. 화면 속 거래액은 늘었다. 농산물을 도매시장에 들이지 않고 거래하면 물류비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국정감사에서는 실제 유통단계가 줄어든 물량이 전체의 12% 안팎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거래액은 성과의 한 지표일 뿐 혁신의 증거는 아니다. 농민이 손에 쥐는 돈은 늘었는지, 소비자가 내는 값은 낮아졌는지, 포장비와 운송비는 누가 부담하는지까지 따져야 개혁의 실체가 드러난다.
청년농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애틋하다. 정부는 청년들이 농촌에 정착하도록 정책자금을 빌려준다. 농업에 첫발을 딛는 마중물이다.
그런데 거치기간이 끝나 상환이 시작되자 일부 청년들은 수확보다 원리금 납부일을 먼저 걱정한다. 지원받은 시기에 따라 상환조건이 다른 문제도 제기됐다.
농업은 자금을 빌린 다음 해 곧장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어렵다. 땅을 일구고 판로를 확보하며 농사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청년을 농촌으로 부르는 데 그치고, 버티는 일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둬선 안 된다. 몇 명이 농촌에 유입됐는지 뿐만아니라 몇 명이 남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각각의 정책 목표는 다르지만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무엇을 했는가'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책의 부작용을 짚는다고 취지까지 부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집행 실적과 생활의 변화를 구분해야 한다.
예산 집행률과 참여 인원 옆에 농가 순소득, 비용 부담, 영농 지속 여부를 나란히 적어보면 어떨까. 농지조사는 선량한 경작자를 보호했는지, 유통개혁은 농민 몫을 키웠는지, 청년농 지원은 농사를 계속할 시간을 벌어줬는지. 질문이 바뀌면 성적표도 달라진다.
농정은 담당 공무원의 서류에서 시작되지만, 그 결과는 농촌에서 완성된다. 농식품부 보고서에 적힌 성공이 농민의 생활속에 같은 이름으로 남을 때, 비로소 정책은 성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