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밤바다’
웬만하면 다 들어봤을 국민송 ‘여수밤바다’의 첫 마디다. 4박자 안에 이 다섯 글자가 주는 매력은 선율의 묘미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감동의 포인트에서도 놓칠 수 없을 만큼 뭉클하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다.
이 한마디가 지닌 계이름 ‘시#도미시#솔’은 그래서 똑같이 반복해 사용하기가 애매하다. 이 음표를 쓰는 순간, 원작자의 독창적 선율을 베꼈다는 티가 금세 나기 때문이다.
수많은 음표들이 수많은 곡들 사이에서 중복되고, 비슷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도 어떤 음표들은 쓰지 말아야 할 무의식이 법칙이 존재하는 건 이 때문이다. 특히 ‘여수밤바다’의 경우처럼, 이 한마디가 노래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와 주 선율로 기억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런데 원작자인 장범준이 최근 내놓은 2집 솔로 음반의 수록곡 ‘사랑에 빠졌죠’에서 이 테마를 그대로 갖다 썼다. ‘여수밤바다’의 ‘시#도미시#솔’이 ‘사랑에 빠졌죠’에선 ‘#도#레#파#도#라’로 둔갑한 것이다. 음의 높이만 달라졌을 뿐, 멜로디는(C장조 기준)은 똑같다. 한 음을 높여 불렀다는 것 외에는 사실상 '여수밤바다'를 복습하고 있는 셈이다.
‘여수밤바다’가 첫 박자와 두 박자에 ‘여~수 밤바’를 골고루 배분하고 마지막 ‘다’에 나머지 두 박자를 사용한 정박자의 느린 발라드로 스타일을 꾸민 반면, ‘사랑에 빠졌죠’는 싱코페이션(당김음)을 통해 좀 더 발랄한 느낌으로 그루브(리듬감)있게 전개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무엇보다 ‘여수밤바다’의 독창적 계이름이 도입부터 똑같이 전개되면서 ‘여수밤바다’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여수밤바다’의 인기에 편승하는 듯한 흐름이 읽혔다.
'여수밤바다'의 후렴구 ‘아아아~’하는 부분에서 계이름은 ‘#솔#파미’다. ‘사랑에 빠졌죠’의 그것은 #파파#레로 첫 음의 반음 차이만 빼면 사실상 같은 구조다. 무엇보다 이 부분의 박자가 같아 ‘여수밤바다’의 후렴구를 그대로 연상시킨다.
장범준은 지난 26일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내 노래에 자기 복제가 많다”고 실토(?)한 뒤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자기 복제’의 정의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검증된 선율을 그대로 갖다 쓰는 것이 아닌, 스타일을 차용하는 것이다.
장범준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이미 여러 번 복제해왔다. 이를테면 한 옥타브(낮은 도에서 높은 도)의 음을 즐겨 사용한다든가, 높은 음에서 가성을 주로 사용한다든가, (이제는 더 자신만의 스타일로 뿌리내린) 내러티브하듯 음표를 굴린다든가 하는 방식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선율을 그대로 갖다 쓰는 건 좋은 말로 ‘복제’지, 사실상 자기 ‘표절’인 셈이다. ‘여수밤바다’의 아름다운 선율을 다시 쓴 덕분인지, 이미 이 곡에 꽂혀있는 수많은 대중이 ‘믿고 듣는’ 음악처럼 ‘사랑에 빠졌죠’에 다시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미 멜론 등 온라인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찍고 순항 중이다.
‘자기 복제’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셀프 디스’로 자신을 낮춘다고 노래 자체가 면죄부를 얻는 건 아니다. 그가 새 노래에서 ‘여수밤바다’의 리프(반복선율)를 그대로 쓰면서 혹시 “리듬을 좀 변화시켰으니 괜찮을 거야”라고 자기 합리화로 넘어간 건 아닌지 곰곰이 곱씹을 필요가 있다.
‘여수밤바다’의 아름다운 첫 마디 선율은 그가 이룩한 과거의 영광일 뿐, 새로운 창작의 재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음악 생활을 해야 할 장범준이 더 좋은 음악을 내놓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수밤바다’ 첫 마디 선율은 창작에 자신이 없을 때, 차트 1위를 하고 싶을 때, 대중의 관심을 다시 받고 싶을 때마다 끊임없이 ‘복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