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숲에는 우리 말고 다른 존재가 있어."
울창한 나무 사이로 쌓인 흰 눈. 공포에 질린 맨발의 소녀가 눈 위를 질주한다. 그러나 도망치던 소녀는 얼마 못 가 구덩이 속 덫에 찔려 죽고 만다. 미국 쇼타임이 제작하고 파라마운트플러스가 제공하는 미드 '옐로우 재킷'은 이렇게 포문을 연다.
이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과거의 있었던 끔찍한 일들과 그곳에서 살아남은 네명의 생존자들의 25년 후 모습을 교차편집해 보여주고 있다.
'옐로우 재킷'이라는 제목만으로는 어떤 것도 연상하기 힘든 이 작품은 지난 6월 티빙과의 합작으로 국내에 진출한 파라마운트플러스의 전략이 결과적으로 옳았음을 보여준다. 앞선 글로벌 OTT 경쟁사들의 국내 상륙 후 지지부진한 성적과 비교해 티빙이라는 안정적인 플랫폼을 타고 몇 편의 작품이 입소문을 퍼뜨리며 자리를 잡고 있는 모양새다. 덕분에 티빙의 MAU도 비약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두 연합팀의 성공적인 전략에 힘입어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이용자들에게는 큰 수혜다. 그만큼 '옐로우 재킷'은 완성도와 오락성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다.
'옐로우 재킷'은 아름답고 풋풋한 십대 소녀들이 첩첩산중에 고립된 후 어떻게 생존해 가는가,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의 슬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 제목인 '옐로우 재킷'은 사건의 중심이 되는 고교생들이 활동하는 여자 축구팀의 이름이다.
1996년, 미국 뉴저지 고등학교의 축구부 소속 여고생들은 주대회에서 우승하고 전국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전세기를 탄다. 그러나 비행기는 울창한 숲 한가운데 추락하고, 성인은 다리 한쪽을 잃은 코치 단 한명만을 남기고 소녀 10여명만 생존하게 된다. 곧 구조팀이 오리란 기대와 달리 그들은 19개월 동안 그곳에서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게 된다. 25년이 지나 그들 중 쇼나, 타이사, 미스티, 나탈리 네 명은 살아남아 이후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곳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일에 대해 모두 입을 다물고. 쇼나는 절친 재키의 남자친구였던 제프와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냉철한 야심가였던 타이사는 뉴저지 상원의원 후보가 돼 있다. 음흉한 사고뭉치 미스티는 노인 요양보호사로. 나탈리는 마약과 섹스 중독과 재활을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 조난 이후 살아남은 유일한 남자로 보이는 트래비스는 한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된다. 트래비스와 연인이었던 나탈리는 깊은 상실감을 느끼며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생각하고 음모를 캐려 하고, 네 사람을 향해 비밀스러운 초대 엽서와 협박 편지가 날아온다. 세상은 그녀들이 돌아온 후 25년 동안 어린 소녀였던 19개월 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지만 네 사람은 그들만의 약속을 지키며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다.
'옐로우 재킷'은 조난물이자 스릴러이면서 호러적인 매력이 다분한 가운데 오컬트의 스산한 기운이 감돌며 탄탄한 서사까지 갖추고 있다. 각 캐릭터들은 고유의 매력과 개성을 갖추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 대해 알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물은 뒤통수를 치며 또 다른 반전을 선사하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흥미를 더한다. 줄리엣 루이스, 크리스티나 리치, 멜러니 린스키 등 관록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정열적인 연기도 좋지만 그들의 소녀 시절을 연기하는 어린 배우들도 그에 못지않은 패기를 보여준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보며 미스터리 조난 시리즈 '로스트'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며, 소녀판 '파리대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독한 한겨울, 살아남기 위해 식인을 하는 것은 '얼라이브'를 연상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옐로우 재킷'은 그들 작품과는 결을 달리하며, 친근한듯하면서도 그동안 보지 못한 색다른 분위기를 뿜어내는 작품이다.
화사하고 어여쁜 여고생들의 풋풋한 우정과 연애, 사랑은 시각적인 재미를 주는 한편, 성인이 된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탄탄한 드라마적 만족감을 준다. 그들이 결코 벗어나지 못한 25년 전의 트라우마가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앞으로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해일처럼 몰아치는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네 사람 외에 또 다른 생존자와 거대한 음모를 암시하면서 시즌1은 성급히 막을 내린다. 시청자의 성마른 기대감을 알기라도 하듯 쇼타임은 시즌2의 제작 소식을 빠르게 알려왔다. 시즌2에서는 19개월 동안 차가운 숲속에서 어린 소녀들이 생존을 위해 살육을 하고 식인을 하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즌1의 스토리를 이끌었던 네명의 주인공 외에 새로운 생존자가 등장해 더욱 풍성한 가지를 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장르적 매력을 한껏 품은, 그럼에도 기존의 그 어떤 장르와도 다른 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옐로우 재킷'의 시즌2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