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빈, 나빴다가 귀여워지는

한수진 ize 기자
2025.05.23 08:00
'당신의 맛' 유수빈 / 사진=지니TV

배우 유수빈의 연기는 늘 경계 위에 서 있다. 위협과 유쾌, 얄밉고도 정다운 감정들이 한 인물 안에서 충돌하고 공존한다. 그가 최근에 연기한 인물들은 악역처럼 보이지만 쉽게 미워할 수 없고, 허당처럼 굴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때문에 지금 이 순간, 가장 얄밉고도 사랑스러운 얼굴을 꼽으라면 단연 유수빈이다.

‘폭력적이다’ 혹은 ‘우습다’ 등 단일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두 감정을 하나의 인물 안에 동시에 밀어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유수빈은 캐릭터의 행동 이면에 다단한 내면을 숨기고, 그것을 아주 천연덕스럽게 드러내는 연기 기술자다. 시청자는 어느 순간 그가 연기한 인물을 미워하면서도 응원하고, 섬뜩해하면서도 귀엽게 여긴다. 그것이 유수빈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진폭이다.

'약한영웅 Class 2' 유수빈 /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2' 속 최효만은 전형적인 일진처럼 보인다. 약자에게 시비를 걸고, 무리를 이끌며, 기세등등하게 은장고를 휘젓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악역의 평면을 뒤집는다. 싸움을 피하려 “바닥 미끄럽잖아, 거기”라며 어쭙잖은 핑계를 대거나, 자신이 괴롭히던 쪽에 서서 물심양면 돕는 장면들에서다. 유수빈은 이 강한 척하지만 겁 많은 인물을 익숙한 클리셰에 가두지 않고, 불안과 생존 본능의 맥락에서 정교하게 구축한다. 최효만의 강포함이 실제론 불안의 발로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처한 세계의 모순-강자 앞에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생존의 법칙-을 드러낸다.

이 연기의 연장선상에 ENA에서 방영 중인 지니TV 드라마 '당신의 맛'의 신춘승이 있다. 그는 표면적으로 더 유치하고 한심하다. 직원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경쟁 음식점을 신고하고, 스포츠카로 출입문을 막고, 심지어 상대를 약 올리려 메롱까지 한다. 하지만 이 얄밉고 유치한 캐릭터가 어느 순간 시청자에게 짠하고 귀엽게 다가오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수빈의 탁월한 정서에 대한 감도가 신춘승의 유치함을 상처로 바꿔 놓는다. “나도 어릴 때 꿈이 있었어. 내가 국밥집 물려받으려고 태어난 것도 아니잖아”라고 말하며 얼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가련함을 불어넣는 그런 순간들. 애초에 나쁜 사람이 아니라 어른이 되는 법을 몰랐던 사람의 유약함을 유수빈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꽉 껴안는다.

'당신의 맛' 유수빈 / 사진=지니TV

이제는 유수빈의 전매특허가 된 ‘나빴다가 착해지는’ 서사. 그는 그 변화의 여정에 괴팍함과 자각, 허세와 무력감, 그리고 인간적인 정과 웃음을 덧입힌다. '당신의 맛' 신춘승은 으르렁대던 한범우(강하늘)에게 금세 마음을 열고, 진명숙(김신록)에게는 “누님~”이라고 부르며 살갑게 군다. 그렇게 유수빈의 춘승은 튀는 행동 속에 잔정을, 철없는 농담 속에 유머가 있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귀여운 사람의 상징이 된다.

유수빈은 오랫동안 감초로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사랑의 불시착‘, ‘스타트업‘, ‘인간실격‘, ‘D.P. 시즌2‘ 등에서 짧은 등장만으로도 극의 흥미를 이끄는 인물로 활약했다. 존재감을 부피로 키운 것이 아니라 밀도로 증명한 배우. 그렇게 쌓아 올린 신뢰는 이제 '당신의 맛'에서 주연이자 서사의 중심이라는 위치로 이어졌다.

섬뜩하게 위협할 수 있고, 순수하게 웃길 수 있으며, 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모순과 충돌, 결핍과 성장의 정서를 하나의 인물 안에 공존시키는 탁월한 설계자. 그 이중성을 꿰뚫고 서사를 움직이는 배우. 그것이 바로 유수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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