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이 뿌리를 내리고 박지현이 꽃을 피운 '은중과 상연'

권구현(칼럼니스트) 기자
2025.09.16 09:00

우정과 치정, 애정과 애증의 복잡미묘한 사중주

'은중과 상연', 사진제공=넷플릭스 

개인주의가 만연한 요즘이라도 외로움이 즐거울 사람은 없다. 호모 사피엔스로 태어난 이상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친구를 곁에 두기 마련이다. 허나 인연이란 항상 여러 빛깔이 있는 법이다. 친구 사이의 우정도 무지개색으로 찬란하게 빛내는 친우가 있고, 어둠처럼 새까만 악우도 있기 마련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중과 상연’이 비추는 우정색은 잿빛이다. 재학생과 전학생으로 만난 10대부터 조력 사망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해달라고 찾아온 40대까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연의 실타래를 복잡하게 엮어온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좋아하고만 싶었는데 미워하기도 했었던, 어쩔 수 없는 애증으로 가슴을 불태워버린 끝에 잿가루만 남아버린 그런 우정이다.

은중(김고은)과 상연(박지현)은 서로가 서로를 동경했다, 좋은 집과 경제 상황, 가족의 정, 성적, 주변의 친구 등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상대에게 부러워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를 닮기 위해 노력했으며, 성격도 바뀌어갔다. 그들의 우정은 그렇게 꽃을 피웠지만, ‘은중과 상연’은 “우리 친구 아이가”를 외치는 우정 예찬 스토리는 아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두 사람의 감정은 어딘가 뒤틀려 간다.

'은중과 상연', 사진제공=넷플릭스 

그 과정의 모순이 꽤나 답답하다. 여러 말 못할 사연과 피치 못할 사정이 거짓말처럼 꼬였다. 친구 사이니까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좋으련만. 그 마음을 상대가 아닌 서랍 속 일기장에 토로하기 바쁘다. 어느 때는 서로를 배려하니까, 어떤 때는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때로는 너무 개인적인 일이기에 그랬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보는 이의 마음은 답답할 행동이다. 말 못 할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친구이건만 그들은 차라리 침묵을 선택한다.

그렇게 은중과 상연 사이는 어딘가 불편하다. 질투, 시기, 자격지심 등 우정과 거리가 먼 다른 이름의 감정들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은중과 상연은 서로를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렇게 30년을 함께하며 서로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과정이 그저 순탄할 수도, 마냥 아름다울 수도 없다. ‘은중과 상연’에서 워맨스를 기대하면 안 되는 이유다.

가만히 두어도 불안할 두 사람의 사이에 김상학(김건우)이라는 폭탄이 떨어진다. 그때부터 작품은 한 남자를 둔 두 여자의 치정이 아닌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은중과 상연의 교감은 상상의 자유를 허용한 반면 은중과 상학의 연애, 상연과 상학의 인연 등 세 사람의 관계가 흔들리는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인다.

'은중과 상연', 사진제공=넷플릭스 

분명한 자충수다. 치정을 부정하기 위한 개연성을 부여하려다 오히려 역효과를 봤다. 차라리 은중과 상연의 관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두 사람의 감정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헤아릴 수 있었을 터다. 15부작이라는 긴 러닝타임과 그 시간을 천천히 유영하는 작품의 리듬을 생각한다면, 그 분량 조절이 매우 아쉽다. 그렇게 작품은 ‘은중과 상연’이 아닌 ‘은중과 상연, 그리고 상학’으로 변해간다.

허나 전체적인 만듦새는 나쁘지 않다. 나름 올곧은 우정을 지키는 ‘은중’이 나무의 줄기라면, 굴곡 있는 우정의 ‘상연’은 피고 지며 나무의 풍성함을 더하는 이파리다. 김고은이 탄탄한 연기력으로 작품의 중심을 잡고, 박지현은 상황마다 변해가는 다양한 감정 표현으로 작품의 색채를 변화시킨다. 김고은이 연기 내공의 무게를 보여준다면, 박지현은 연기의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이 두 배우의 하모니가 매우 훌륭하고, 이는 곧 작품의 완성도로 직결된다.

미학적인 측면도 충만하다. 영상, 음악, 연출 모두 흠잡을 곳 없다. 시청자가 등장인물들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유다. 나아가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로, 삐삐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흐름 또한 인상 깊다. 제아무리 15부작이라도 은중과 상연의 30년을 표현하기엔 짧은 시간일 터, 하지만 작품은 다양한 소품을 통해 그 세월의 무게를 녹여낸다.

'은중과 상연', 사진제공=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엔 사진이 중요한 장치로 쓰인다. “사진은 순간이기에 진실을 담을 수도, 거짓을 진짜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어린 시절, 은중이 첫사랑에 들었던 그 말처럼 은중과 상연은 한 컷의 프레임 안에 각자의 진심과 순간을 채집했다. 그 사진에는 우정과 사랑이 담겼을 수도, 혹은 그렇게 보였던 다른 감정이 존재할 수도 있다.

‘찰나의 거장’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사진은 삶을 붙잡는 동시에 그것을 영원히 멈추게 한다”고 정의했다. 과연 두 사람의 마지막 한 컷은 어떤 삶을 기록할지, 서로의 모든 것을 불태웠던 그들의 우정은 어떤 색의 잿빛으로 우리 가슴 속을 물들일지, 영원히 멈춰 있을 두 여성의 그 순간을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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