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애하는 도적님아' 남지현, 신뢰로 뻗어낸 연기 욕심 [인터뷰]

한수진 기자
2026.02.25 11:55

"개인적으로 욕심 많았던 작품"
"은조와 닮기보다 동경해"
"신뢰감이 내 강점이 되길 바라"

남지현은 KBS2 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에서 홍은조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다양한 얼굴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한 인물 안에 여러 얼굴이 공존하는 구조가 배우로서 도전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남지현은 은조와 자신의 닮은 점보다 동경하는 점이 많다고 설명하며, 옳다고 믿는 선택을 흔들리지 않고 지켜내는 마음을 동경한다고 밝혔다.
배우 남지현 / 사진=매니지먼트 숲

배우 남지현의 연기는 튀지 않지만 밀리지 않고, 앞서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작품이 요동칠수록 그는 더 또렷해지고 서사가 복잡해질수록 연기는 더 단단해진다.

지난 22일 인기리에 종영한 KBS2 토일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에서 남지현이 보여준 얼굴 역시 그러했다. 그는 극에서 낮에는 의녀, 밤에는 도적, 그리고 영혼이 바뀐 뒤에는 대군으로 살아갔다. 홍은조라는 하나의 인물 안에 세 개의 결을 품은 캐릭터를 과장 없이 설계했다. 요란한 변신보다 호흡과 시선의 세밀함으로 인물을 분리했다. 이 드라마가 끝까지 균형을 잃지 않고 단단하게 서사를 뿌리내렸던 이유다.

"작품이 사랑받는 건 장르를 넘어서 배우로서는 정말 큰 감동이에요. 이번 작품은 개인적으로도 욕심이 많았던 작품이라 더 뜻깊었어요. 많이 봐주셨으면 했고, 보고 계시는 분들은 작품에 애정을 가져주시길 바랐거든요. 그런 바람이 이뤄진 것 같아서 감사해요."

드라마 종영 후 남지현은 작품을 천천히 떠나보내고 있다. 그는 지금도 은조를 "천천히 보내는 중"이라며 "결말까지 잘 마무리된 것 같아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배우 남지현 / 사진=매니지먼트 숲

남지현이 '은애하는 도적님아'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대본이다. 여러 얼굴을 연기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늘 발전적이고 새로운 걸 선호하는 그에게 놓칠 수 없는 작품이었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어요. 한 인물 안에 여러 얼굴이 공존하는 구조가 배우로서는 쉽지 않지만, 그래서 더 욕심이 났죠. 부담이 되기보다는 '이걸 잘 해내면 많이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연기로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이 매우 많다고 느꼈고요. 그래서 망설이기보다는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인물의 성장 서사 역시 그의 마음을 붙들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렇게 살고 있진 못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다. 사람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조금씩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은조도 사건을 마주하면서 선택이 조금씩 바뀐다. 그래서 대본이 되게 설득력 있게 느껴졌고, 그걸 잘 표현하고 싶었다. 내 소망이 담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은조와 자신의 닮은 점에 대해서는 "닮기보다 동경에 가깝다"고 했다. 그는 캐릭터가 가진 과감함과 단단함을 동경했다. 비슷한 지점을 한참 생각하던 그는 "옳다고 믿는 선택을 쉽게 흔들리지 않고 지켜내는 마음"이라는 근사한 답을 내놨다.

"은조와 닮기보다 동경하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일을 해서 앞에 놓인 한계에 좀 순응하면서 유연하게 행동하거든요. 은조처럼 돌파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조용하게 돌아서 가는 편이죠. 저보다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과감한 면이 있죠(웃음). 은조와 비슷하다고 느낀 지점이 있다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잘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요. 그런 생각을 하기까지 오래 고민하는 편이거든요. 그 시간에 대한 존중이 있어요."

배우 남지현 / 사진=매니지먼트 숲

남지현은 홍은조를 변화하는 인물로 바라보고 극적인 전환보다 과정에 집중했다. 감정을 단번에 폭발시키기보다 장면마다 조금씩 쌓아가는 방식을 취했다. 인물의 설득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은조는 사건을 겪으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변한다기보다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선택이 달라지는 사람이죠. 그래서 큰 변화를 보여주기보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길 바랐어요. 설득력이 없으면 시청자분들도 따라오기 힘들 것 같았거든요."

은조의 변화하는 감정선 가운데 가장 큰 변곡점은 아버지 홍민직(김석훈)의 죽음이다. 비극을 소모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균열을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남지현은 대본이 나온 뒤 작가, 감독과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누며 장면의 완성도를 위해 남다른 공을 들였다. 슬픔을 무작정 앞세우기보다 이후 서사까지 이어질 무게를 먼저 계산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이야기가 계속 가야 했어요. 그래서 감정을 정리하면서 가려고 했죠. 대본이 나오자마자 작가님, 감독님이랑 많이 이야기했어요. 이 장면의 비극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잘 표현하면 은조의 후반 서사까지 같이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신중하게 준비했습니다."

배우 남지현 / 사진=매니지먼트 숲

은조와 이열의 영혼이 바뀌는 장면 역시 중요했다. 설정 자체가 자칫 과장되거나 희화화될 위험이 있어서다. 그는 변화된 인물을 겉모습으로 표현하기보다 말투와 태도, 작은 습관의 차이로 풀어냈다. 상대역 문상민의 연기 톤과 리듬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이 쌓아온 대화와 리딩 과정이 이 장면의 완성도를 떠받쳤다.

"영혼이 바뀌었을 때 아무래도 말투를 가장 신경 썼어요. 실제에서 저랑 (문)상민이랑 말하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래서 상민이가 출연한 작품도 많이 찾아보고 인터뷰 영상도 보면서 연구했어요. 사전 리딩이랑 대화를 많이 나눈 게 큰 도움이 됐고요. 뒷짐을 질 때 어떤 손을 위로 올리는지 같은 작은 디테일까지 살폈어요. 그런 부분들이 쌓여야 설득력이 생긴다고 봤어요."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체력적인 부담도 컸다. 두 인물(홍은조, 이열)이 맞붙는 장면이 많았고, 감정 소모가 큰 신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그럴수록 현장에서 둘의 호흡은 더 중요해졌다. 남지현은 "문상민에게 많은 의지를 했다"고 털어놨다. 서로가 버팀목이 돼준 시간이었고, 그 에너지는 좋은 시너지로 화면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소화해야 하는 신이 많아서 드라마 중후반쯤 되면 힘든 순간이 와요. 다행히 혼자 버틴 게 아니라 저와 (문)상민이가 붙는 신이 정말 많아서 더 의지가 됐어요. 상민이가 현장에서 분위기를 잘 끌어줘요. 저는 안정감을 주는 편이라면 상민이는 으쌰으쌰하는 에너지가 있거든요. 그런 걸 잘해주니까 정말 고마웠죠. 더운 날씨처럼 어찌할 수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다 같이 한 마음으로 해냈던 기억이에요."

배우 남지현 / 사진=매니지먼트 숲

'은애하는 도적님아'는 남지현에게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 다중 연기로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나누는 법을 다시 배웠고, 장르적 장치를 기교로 소비하지 않는 법도 배웠다. 무엇보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더 또렷하게 각인했다. 강렬함으로 각인되는 배우가 아니라 장면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배우. 오래 가는 힘은 요란함이 아니라 신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역부터 연기를 해왔는데 저는 막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신 왜 좋은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믿고 보게 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개성이 강한 배우들 사이에서 잘 섞이는 사람, 물 같은 배우랄까요. 단어로 뽑으면 신뢰감이 제 강점이었으면 좋겠어요. 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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