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잘생긴 외모에 청순함과 해사함, 그리고 장난기 어린 유머까지 겸비했다. 영화 '파반느' 속 정적이고 건조한 분위기와 달리, 실제로 만난 문상민은 재치 있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차분히 사려를 담아 건네는 말 속에서 인물의 결을 따라가되, 그 안에서 스스로의 진정을 부단히 꺼내려는 열정마저 느껴졌다.
문상민은 KBS2 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에 이어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까지 연초부터 안방과 OTT를 오가며 존재감을 각인했다. 그중에서도 '파반느'는 그의 첫 영화 데뷔작으로, 매력을 십분 드러낸 작품이다. 상실과 오해 속에서 사랑을 배워가는 청춘의 이야기 속에서, 그가 연기한 경록은 여느 청춘의 아픔과 혼란을 품은 인물이었다.
"'파반느' 대본을 읽었을 때 좋은 느낌을 받았어요. 내 안의 고독함을 꺼낼 때가 왔구나 했죠(웃음). 그걸 풀고 싶었고 그 부분에 있어서 경록이라는 친구가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쭉 읽어보며 연기하면 어떨까 싶었는데 괜찮더라고요. 나한테 보지 못한 느낌을 받아서 무조건 해야겠다 싶었어요. 동시에 '이 시나리오가 어떻게 나한테 왔지' 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영화 시나리오를 받은 게 처음이라 더 의미가 컸어요."
경록은 상처를 지닌 인물이고,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데 서툰 인물이다. 문상민 역시 그 지점이 자신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또래의 청춘처럼 아직 완전히 성숙해지지 못한 상태에서,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들이 반복된다는 점에서였다.
"저는 스물 중반이 되면 되게 성숙해질 줄 알았어요. 맞는 선택을 할 줄 알았고요. 그런데 아직 뭔가 다 서툰 거예요. 사람을 대하는 거나 인생을 사는 게요. 그래서 스스로 혼란스러워서 혼자만의 방황을 하고 있었고, 그런 부분에서 외로웠어요. '누군가한테 말해야 하나? 말할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런 고민을 했었죠. 경록도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는 인물이에요. 극에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서 넋두리를 하는데 저 역시 그런 마음이어서 공감이 됐죠."
소설 원작 속 경록과 영화 속 경록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역시 고민의 지점이었다. 문상민은 염세적인 결을 유지하기보다, 감정에 솔직한 20대 청년으로 인물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이 빨라지고, 슬픔 앞에서는 울음을 숨기지 않는 평범한 청춘의 모습 말이다.
"원작에선 경록이가 좀 더 염세주의적이고 말수가 덜해요. 원작과 영화 속 경록을 너무 다른 거 아닌가 싶기도 했죠. 영화에서는 인물이 말이 빨라지고 텐션에 있어서 다른 느낌인 거 같아서 고민했어요. 그런데 저는 경록을 평범한 20대 남자 청년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사람 앞에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말이 빨라지고, 슬프면 우는, 솔직해지고 싶었어요. 그 솔직함이 서툴더라도 감정에 직관적으로 솔직하게 연기하자 했어요."
경록이 미정(고아성)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역시, 연기적으로는 감정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문상민은 그 감정을 동정이 아닌 처음 겪는 끌림으로 해석했다. 누군가에게 시선이 머무르고, 그 사람을 향해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되는 감정의 시작이었다고 본 것이다.
"대사에서 요한(변요한)이 미정에 대한 마음을 물었을 때 경록이 '불쌍하잖아요'라고 말해요. 그런데 경록은 미정을 불쌍하게 보거나 동정하지 않았다고 봤어요. 그런 사람을 처음 만나서 서툴렀던 것 같아요. 요한에게도 어긋난 마음에서 '불쌍하잖아요'라고 둘러대듯 한 말 같아요. 사실 누군가에게 관심이 가고 호감이 생기면 눈을 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경록에게 그런 사람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미소 짓게 하고 표현하게 하는. 그런 자신을 보면서 천천히 마음을 자각한 거 아닌가 해요."
완성된 영화를 마주한 순간,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의 연기를 낯설게 바라봤다고 했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감정과 서툰 표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만큼은 또렷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함께한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를 감싸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영화에서 제 모습이 서툴러 보였어요. 정돈돼 있지 않고 많이 서툰데 진심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만약에 (고)아성 누나와 (변)요한이 형이 없었다면 저 연기가 납득이 됐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영화 보는 내내 제 연기를 울타리처럼 감싸주고 앙상블을 내준 걸 보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했어요."
특히 미정 역의 고아성과의 호흡은 경록이라는 인물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문상민은 촬영 내내 고아성이 자신을 배우 문상민이 아닌 경록으로 바라봐줬다고 말했다. 그 시선이 연기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됐다.
"(고)아성 누나한테 감사한 건 저를 경록 그 자체로 봐주셨어요. 후배 문상민보다는 첫 미팅 때부터 경록으로 봐줬고 그 마음으로 항상 함께해줬어요. 누나가 나오지 않는 신이더라도 멀리서 응원을 보내고 있는 눈빛이 있었어요. 눈빛을 보는데 절 정말 사랑해 주는 거예요. 제 대사에 감동의 자극을 받고, 진짜 날 빛나게 해주는구나 싶었어요."
경록의 방황과 선택의 순간들은 배우 개인의 시간과도 맞닿아 있었다. 문상민 역시 여전히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고민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혼자 판단하고 책임지는 방식이 때로는 부담되지만, 동시에 자신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고민하고 항상 고민의 순간에 놓여 있어요. 저는 그럴 때마다 터놓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안에서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해서 결정을 내리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혼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게 저한테는 좋은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책임지고 결과가 아닐지언정 한번 부딪혀보고 다른 걸 해보면 되니까. 그러면서 제 스스로 발전을 시켰던 것 같아요. 지금도 고민의 순간이 많아요."
연기 과정에서 이종필 감독의 디렉션 역시 큰 도움이 됐다. 특히 감정을 끌어올려야 하는 장면에서 감독의 한마디가 연기의 방향을 바꿨다고 회상했다. 눈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진심이 중요하다는 조언이었다.
"LP바에서는 툭하면 눈물이 나는 거예요, 미정 생각에. 그런데 다른 날에는 눈물이 잘 안 나더라고요. 울어야 하는 신에서 첫 테이크에 눈물이 안 났어요. 제 스스로도 그렇고 아쉬운 연기를 했는데 감독님이 '상민아 괜찮아 눈물이 중요한 게 아니야. 여기선 네가 진심으로 느끼고 하면 돼. 마냥 안 슬플 수도 있어. 벙질 수도 있고, 몸으로 표현해도 돼. 열려 있으니까 편하게 생각해. 시간을 충분히 줄 테니까 생각이 끝나면 말해줘'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뭔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영화에서 화제가 된 변요한과의 키스 장면 역시 그는 담담하게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돌아봤다. 감정의 정적을 깨야 하는 순간이었기에, 애매한 표현보다 분명한 행동이 필요했다고 했다.
"진지하게 찍었어요. 그리고 이 장면을 이렇게 주목해 줄지 몰랐어요. 정적을 깨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냥 뽀뽀로는 안 될 것 같다고 하셔서 한 번에 가는 거니까 진하게 끝내자고 해서 찍었어요. 키스하고 나서 제가 가글하고 형이 한 번 더 쪽 하면서 '말하지 말랬잖아' 하는 건 애드리브였어요."
문상민에게 '파반느'는 지금 자신의 얼굴을 기록할 수 있던 고마운 작품이다. 완벽히 정의되지 않은 청춘의 시간, 그 안에서 배우로서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반느'는 20대 중반의 저의 얼굴을 담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얻고 싶은 반응은 뭔가 '파반느'를 좀 더 있는 그대로 보시는 그대로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해석의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뜨거운 청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을 천천히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을 통해 성장한 게 책임질 수 있는, 나한테 잘 맞는 옷을 잘 알고 있구나의 믿음이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