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성, 10년 기다린 '파반느'…"나의 한 시절 담아" [인터뷰]

한수진 기자
2026.03.02 12:00

2017년 처음 대본 건네받고 공개되기까지 10년 걸려
"미정은 미생물 같은 사람…모습 찾기까지 오래 걸려"
"문상민·변요한·이종필 감독, 내 초라한 모습까지 감싸줘 행복"

고아성은 2017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준비한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에서 미정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각색한 것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세 사람이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며 삶과 사랑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고아성은 미정을 미생물 같은 사람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나약함을 잘 아는 사람의 눈빛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문상민과 변요한이 각각 경록과 요한 역을 맡아 함께 호흡을 맞췄다.
배우 고아성 / 사진=넷플릭스

배우에게 모든 작품은 소중하고 각별하겠지만 고아성에게 '파반느'는 유독 특별한 작품이다. '파반느'의 대본을 처음 건네받은 건 2017년이었고, 이후 매해 수정 과정을 거쳐 2024년 촬영에 들어갔다. 영화가 공개되기까지 거의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종필 감독과 단둘이 작품을 논의하던 시간에서 시작해, 문상민이 캐스팅되고 함께 첫 리딩을 나눴을 때는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감정이 북받쳤다.

지난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는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각색한 작품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세 사람이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며 삶과 사랑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고아성은 세 인물 중 한 명인 미정을 연기했다. 세 사람 가운데 미정을 가장 오래 붙들고, 오랜 시간 염원해 온 인물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품에 관한 질문이 이어질수록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마이크를 잡고 순수하고 고운 목소리로 OST를 여러 차례 부르기도 했다. 그 모습에는 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진심 어린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의 청춘을 생각해 보게 됐다'는 리뷰를 보고 되게 행복했어요. 어찌 보면 현재 청춘을 보내고 있거나 이미 지나온 분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영화 속 대사처럼 결국 최고의 영화는 사랑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이 장르를 좋아해서 멜로에 임할 때는 더 신중해지는 편이에요. '파반느'는 개인적으로 오래 꿈꿔왔던 소망을 이룬 작품이기도 합니다."

배우 고아성 / 사진=넷플릭스

이종필 감독과의 재회 역시 이번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 요소였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이후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미정의 방향을 함께 만들어 갔다. 특히 외형적 조건보다 내면의 결을 중심에 두는 접근이 중요했다. 분장과 의상, 눈빛과 움직임까지 수차례 논의를 거치며 미정이라는 인물을 영화에 맞게 재구성해 갔다.

"지금의 미정의 모습을 찾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어요. 소설 속 인물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영화에 적합한 미정을 만들어가야 했죠. 외형적인 조건보다 자신의 나약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눈빛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과 긴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 지점을 중심으로 캐릭터를 잡아갔습니다."

미정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고아성은 자신이 구축해온 배우로서의 이미지와 일부러 거리를 두는 선택을 했다. 체중을 증량하고 걸음걸이까지 바꾸는 등 인물의 현실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다. 공간이 주는 힘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연기 방식 역시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정을 미생물 같다고 느꼈어요. 눈에 띄지 않으려 평생 애를 써온 사람이요. 혼자 밥을 먹고 싶어서 도시락을 싸가고 지하에서 일하는.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미생물 같은 사람. 저는 공간에서 받는 영향을 크게 느끼는 배우예요. 미정의 집이나 생활 공간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많이 냈어요. 미정은 거울을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닐 것 같아서 옷장 거울로 화장하는 설정을 제안하기도 했죠. 이런 디테일들이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배우 고아성 / 사진=넷플릭스

작품에서 로맨스 호흡을 맞춘 문상민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문상민의 연기를 "200점 만점"이라고 표현하며 첫 리딩 당시부터 인물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체감했다고 했다. 촬영을 거듭할수록 관계의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쌓여갔다고. 멜로 장르에 처음 도전하는 과정에서의 어색함조차 인물의 정서와 맞닿아 있었다.

"문상민이라는 배우가 오랫동안 상상해 왔던 인물의 모습으로 나타난 느낌이었어요. 긴장에서 오는 불균형이 오히려 좋았고, 경록이라는 인물이 이미 준비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죠. 멜로는 처음이라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는데, 그 어색함이 미정이 서서히 마음을 여는 과정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문상민이 연기한 경록 외에도 변요한이 맡은 요한 역시 작품의 또 다른 중심축이다. 고아성은 세 인물이 만들어낸 균형과 조화에 대해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함께한 배우들과의 호흡이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힘이었다고 말했다.

"배우로서는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 배우들을 만날 때 주파수 맞듯 쾌감이 커요. 중요한 축을 담당해 준 변요한, 문상민 배우에게 감사했어요. 제가 실제로 세 자매이기도 하고, 전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도 세 여성의 우정 서사가 있었어요. 저는 세 사람의 조화가 참 좋아요."

배우 고아성 / 사진=넷플릭스

특히 고아성은 '파반느' 촬영에서 단순한 연기 이상의 여운을 쥐었다. 특정 장면과 감정이 촬영이 끝난 뒤에도 오래 잔상처럼 여운이 이어졌고, 스스로가 인물의 시간 안에 머무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촬영하면서 이상한 잔상이 남아 있었어요. 경록의 뒷모습이 집에 와서도 계속 떠오르고, 내가 영화를 찍고 있는 건지 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사랑의 의미 또한 고아성에게는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함께하지 못하는 결말 속에서도 인물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랑이 남기는 힘을 믿게 됐다고 말했다. 미정이라는 인물을 떠나보내는 과정 역시 그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됐다.

"이 영화는 미정과 경록이 결국 함께하지 못하는 결말이지만, 그렇다고 미정이 숨어지내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는 않아요. 경록이 남긴 빛으로 씩씩하게 살아가죠. 혼자 있을 때도 든든해지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아성에게 '파반느'는 더없이 애틋한 작품이다. 오랜 시간 기다리고 함께 만들어온 결과물이자, 배우로서 자신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 경험이었다.

"'파반느'는 제 진짜 모습을 담을 수 있어서 더 의미가 남은 작품이에요. 저의 한 시절을 담아냈다는 느낌이 다분히 들었어요. 진정한 나의 모습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행복한 것 같아요. 경록이 미정을 알아봐 줬듯 문상민, 변요한, 감독님 모두가 저의 초라한 모습까지 감싸준 것 같아 정말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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