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없이도 믿게 되는 얼굴, '미혼남녀' 한지민

조이음(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03.06 11:04
배우 한지민은 20여 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변화해왔고, 특히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기를 선보였다. JTBC 드라마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에서 한지민은 일은 유능하지만 연애는 서툰 34세 이의영 역을 맡아, 효율적인 연애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다. 한지민은 복합적인 감정을 설명 없이 인물의 태도와 호흡으로 설득하며, 시청자들이 이의영의 감정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이끌었다.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 한지민 / 사진=SLL

청순하고 맑은 얼굴, 해사한 미소, 그리고 당찬 이미지까지. 배우 한지민은 시대와 함께 변해왔다. 2003년 데뷔 이래 20여 년의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 자신에게 덧씌워진 얼굴을 정면으로 깨뜨리기도 하고, 조용히 다른 방향으로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얼굴을 꺼내 들기도 했다. 그 변화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캐릭터가 지닌 주된 감정의 탄생을 찾아가는 인물들. 한지민은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배우다.

이러한 흐름은 JTBC 토일드라마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극본 이이진, 연출 이재훈)에서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이 드라마는 사랑을 결심한 여자가 소개팅에서 두 남자를 만나고 끌리고 흔들리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로맨틱 코미디로, ‘효율’이라는 차가운 단어를 사랑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운다.

알고리즘이 취향을 분석하고 조건이 관계의 출발점이 되는 지금, 사랑을 이야기하는 드라마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제목도 없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는 운명적인 첫 만남이 늘 공식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이 시대의 성인남녀들은 운명이 알아서 날 찾아주길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 드라마 시작부터 한지민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온 내레이션은 이 작품의 기획 의도이자, 지금 이 세대 연애의 정서를 정확히 짚는 말이기도 하다.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 한지민 / 사진=SLL

한지민이 연기하는 이의영은 더 힐스 호텔 구매팀 선임으로, 일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지만 연애에서는 늘 타이밍이 어긋나는 서른넷의 여성이다. 자연스러운 인연을 믿어왔던 그가 어느 순간 소개팅이라는 인위적인 선택을 감행하는 것은 단순한 외로움의 산물이 아니다. 삶을 단단하게 다지며 살아온 날들 속에서 사랑과 연애는 우선순위에서 조금씩 밀려났고, 이제야 그 자리에 눈을 돌렸지만 자연스러운 인연을 기다리기엔 이미 지쳐버렸다. 연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는 욕망과 기다림에 지친 사람의 조용한 결단이 겹친 결과다. 한지민은 이 복합적인 감정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태도와 호흡으로 시청자를 설득한다.

1화에서 의영은 자신을 좋아한다고 믿었던 대학 후배 강도현(신재하)에게 이른바 ‘0고백 1차임’을 당한다. 같은 호텔에서 일하게 된 도현은 주변의 오해를 살 만큼 의영에게 다정하게 굴지만, 그의 마음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런 도현의 태도에 설렘을 느꼈던 의영은 자신이 오해했음을 알게 되고 상처받는다. 설상가상으로 도현은 의영의 후배들 앞에서 의영을 향한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밝힌다. “선배 좋은 사람이죠. 근데 그거랑 연애하고 싶은 거랑은 다르죠. 연애 상대로는 저보다 연상이기도 하고.” 고작 한 살 차이라는 사실보다 그 말이 던지는 현실의 잔인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 한지민 / 사진=SLL

이후 의영은 오래된 찻잎에 자신을 빗대며 슬픔을 삼킨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연애도 사랑도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착각이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한지민은 감정을 눌러 담은 채 울음을 애써 참아보려 한다. 제때 쓰이지 못하고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자각은 오래된 찻잎처럼 씁쓸하게 남는다. 그 짧은 정적과 표정만으로도, 의영이 더는 사랑을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했음을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한지민은 서사의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의 박자와 어른의 연애가 지닌 현실적인 무게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능숙한 직장인의 단단함과 사랑 앞에서만큼은 여전히 주저하는 얼굴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인물의 결을 분명히 한다. 이야기의 화자는 분명 이의영이지만, 한지민은 자신이 도드라지기보다 장면이 먼저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자연스러움으로 시청자를 이끈다.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 하지만 초반 몇 회만으로도 분명해진 것은, 이 드라마가 효율로 시작해 효율로 끝날 수는 없으리라는 점이다. 계산을 통해 관계를 선택하려 했던 의영은 결국 계산이 무너지는 순간과 마주하게 될 테고, 그 지점에서 비로소 감정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시작할 테다. 한지민은 효율성을 좇던 인물이 서서히 흔들리는 과정을 지난 시간들이 축적된 내공으로 설득해 낸다.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믿게 되는 얼굴. 그 신뢰가 이 드라마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조이음(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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