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하 ‘건물주’)은 장르물 만찬이다. 다양한 장르물을 한 드라마에서 만날 수 있다.
‘건물주’는 하정우 임수정 김준한 정수정 심은경 등이 출연해 빚에 허덕이는 생계형 건물주가 가족과 건물을 지키기 위해 가짜 납치극에 가담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와 비슷한 중년 가장의 짠한 스토리를 예상하면 시작부터 기대를 화끈하게 배신한다.
시작은 형사물이다. 건물주 주인공 기수종(하정우)의 건물을 정체불명의 금융회사 리얼캐피탈이 노리자 기수종의 처남인 형사 김균(김남길 특별출연)이 비밀리에 탐문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정통 형사물에서 만날 수 있는 조마조마한 서스펜스가 펼쳐진다. 그러다 김균이 리얼캐피탈 측이 개입된 의문의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한다.
‘건물주’는 이어 납치극 범죄물에 본격 돌입한다. 기수종은 영끌과 돌려 막기로 건물주가 되기는 했지만 매달 이자 갚기에 허덕이는 처지다. 재개발로 대박을 꿈꾸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리얼캐피탈이 기수종의 채권을 사들여 빌딩을 강탈하려고 하자 부자집 데릴사위 친구 민활성(김준한)이 벌이는 납치극에 가담한다.
납치 대상이 민활성의 부인(정수정 분)이다 보니 정체를 들키면 안 되는 처지이기에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진다. 감금 장소가 건물 지하의 폐냉동고라 건물 입주자, 가족, 그리고 결국은 경찰에게까지 납치가 들키면 안 되는 위기 상황을 간신히 헤쳐 나가는 스릴러 어드벤처물로 드라마는 전환된다.
장르의 변화 중간 중간 가족극이나 휴먼 드라마가 양념으로 배치돼 있다. 기수종의 사연 있는 딸에 대한 애틋한 부모의 정이나, 빚더미의 건물을 지키기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추가로 돈을 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요즘 드라마들이 몇몇 장르를 섞어 시청자들의 입체적인 관심사를 최대한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있으니 크게 색다른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건물주’는 대개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몇 장르의 하이브리드 창작 방식보다 더 다채롭다.
가족극과 대비되는 불륜 막장극까지 등장한다. 납치극이나 불륜 드라마는, 불편한데 웃기는 블랙코미디 색채를 드러내고 이는 드라마를 대표하는 질감으로 전면에 드러난다. 민활성이 기수종에게 경찰 추적 사실을 몰래 알리는 편의점 장면에서 들키지 않기 위해 점원에게 돈을 계속 주는 장면은 블랙코미디다.
친구 부인 납치 사건이 해결됐는데 주인공이 세입자 카페주인을 본의 아니게 가위로 찌르는 바람에 다시 어쩔 수 없이 그를 납치하게 되는 상황도 블랙코미디 소동극으로 흘러가며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등장인물들이 연쇄적으로 크게 다치거나 죽어 나가지만 안타까움이나 공포보다는 어이없는 느낌이 크다. 문제를 덮으려 애쓰지만 일은 계속 눈덩이처럼 커지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소동극은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희극적이라 역시 블랙코미디다.
총 12회의 ‘건물주’는 장르들의 현란한 등장이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주인공의 위기 탈출 어드벤처 스릴러와 블랙코미디가 결합된 상태로 정돈, 유지된다. 주인공이 건물을 지키기 위해 닥쳐오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결국은 범죄와 부도덕한 행위들로 인한 처벌을 피해나가는 방식이 된다.
이런 ‘악인’ 주인공을 권선징악이 분명한 대중 드라마에서 한껏 응원하는 분위기로 전개될 수는 없다. 블랙코미디로 다루면서 주인공 행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불편함을 웃음으로 중화시켜야 주인공의 위기 극복 과정을 시청자들이 따라갈 수 있다.
블랙코미디는 주로 사회의 부조리함을 드러내고 풍자하는 쪽으로 진행된다. 어떤 엔딩이 뒤따를지 궁금한 가운데 ‘건물주’는 현재 등장인물들이 돈에 아등바등하다 인간성 상실로 폭주하는 부조리한 풍경을 다루고 있다.
‘건물주’는 색다르고 실험적이다. 영화나 OTT 드라마가 아니라 TV 미니시리즈 드라마로는 만나기 힘들었던 장르물적 상황 전개나 설정들이 대거 등장한다. 시청률(이하 닐슨코리아)은 2회 최고 4.5%를 찍은 후 2%대 후반과 3%대를 오가고 있어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펀덱스 조사에서 3월 3,4주차에 토일드라마 화제성 1위를 지킨 것을 보면 마니아 팬들을 나름 양산하고 있는 분위기다. ‘건물주’는 잘 마무리한다면 대중적인 TV 드라마의 고착되기 쉬운 지평을 조금은 더 넓힌 작품으로 기억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성적은 높았던 기대치와 화제성에 비해선 미미한 결과물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건물주’는 현재 뿌려진 수많은 사건의 떡밥 회수 못지않게 ‘악행’이 쌓여 가는 주인공에 대해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단죄가 매우 중요하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로 가기엔 너무 많이 갔다. 남은 4회가 그래서 그 어떤 작품보다 궁금하다.
최영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