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늦여름, 한국 힙합 신은 이른바 '컨트롤 대란'으로 시끄러웠다. 이센스와 개코로 대표되는 당시의 래퍼 디스전은 예술가로서 지켜내야 할 태도와 가치관을 두고 벌어진 다툼이었다. 래퍼들은 비트 위에서 은유와 펀치라인을 무기 삼아 싸웠고, 힙합이라는 장르에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내는 기폭제가 됐다.
이 뜨거웠던 '컨트롤 대란'의 씨앗은 지금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됐으나 당시엔 신예였던 켄드릭 라마의 도발에서 비롯했다. 그는 동료 래퍼 빅 션의 노래 '컨트롤'(Control)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수많은 래퍼를 호명하며 "경쟁을 통해 힙합의 수준을 끌어올리자"고 선포했고, 이 거대한 불씨는 곧장 한국 힙합 신에도 옮겨붙었다.
한국판 디스전의 방아쇠를 당긴 장본인은 스윙스였다. 그 시절의 스윙스는 기성세대를 도발하며 판을 거침없이 뒤흔드는 피 끓는 젊은 도전자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2026년, 상황은 묘하게 뒤바뀌었다. 스윙스는 이제 신을 호령하는 레이블의 수장이자 기득권을 가진 어른의 위치에 섰고, 그를 향해 날 선 창을 겨눈 것은 20대의 젊은 래퍼 빅나티였다.
사실 스윙스라는 아티스트가 한국 힙합 신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매력은 독보적이다. 대중의 열광이든 따가운 눈총이든 일단 모든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탁월한 화제성을 지녔고, 장르 본연의 거친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를 대중적인 쇼 비즈니스로 치환하는 감각이 있다. 힙합이라는 문화 특유의 태도를 완벽히 체화한 동시에, 그 판을 읽어내는 전략적 수완까지 갖춘 플레이어는 흔치 않다. 무엇보다 그는 '랩 배틀'이라는 링 위에서 가장 날뛰는 타고난 파이터다.
그렇게 랩 배틀의 화신과도 같았던 스윙스는 또 한 번 거대한 디스전의 한가운데 섰다. 그러나 이번 무대는 대중이 알던 과거의 양상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비트 위에서 서로의 라임을 겨루던 투기는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는 비트가 사라진 채 날 선 진실 공방이 대신 채우고 있다.
갈등을 크게 키운 건 지난 16일 빅나티가 유튜브에 공개한 곡 '인더스트리 노우스(INDUSTRY KNOWS)'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곡에 쓰인 비트가 바로 2013년 한국 힙합 신을 뒤집었던 빅 션의 '컨트롤'이라는 점이다. 상징성을 띤 이 비트 위에서 빅나티는 상당히 수위 높은 폭로를 얹었다. 스윙스가 소속 아티스트들의 동의 없이 저작인접권(마스터권)을 매각해 개인 채무를 변제하고 고급 외제차를 샀다는 의혹, 나아가 폭행과 성상납 시도라는 자극적인 주장까지 더해졌다.
디스곡의 명분이 된 내막을 들여다보자. SNS 등에 확산된 둘의 갈등 단초를 짚어보면, 사건의 발단은 과거 빅나티가 스윙스의 영입 제안을 거절하며 다소 껄끄러워진 상태에서 마주한 어느 술자리였다. 취기가 오른 빅나티가 스윙스의 팔을 먼저 쳤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스윙스가 빅나티를 벽으로 밀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후 스윙스가 사과와 화해를 위해 지속적으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빅나티가 이를 피하며 소강상태가 이어졌고, 결국 두 사람이 직접 만나 CCTV 영상을 함께 확인하며 오해를 풀었다고 알려졌다. 그러고 나서 지난 16일 빅나티가 '인더스트리 노우스'를 발표한 것이다.
때문인지 스윙스의 방어는 랩이 아닌 말을 통한 팩트 체크로 이뤄졌다. 그는 라이브 방송을 통해 유통사로부터 받은 120억 원의 선급금 압박, 그리고 회사의 파산을 막기 위한 경영적 결단이었음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폭행 시비라는 지엽적인 곁가지를 쳐내고 나면, 이번 논란의 가장 굵직한 뼈대는 저작인접권(마스터권) 매각이다. 대중음악 산업에서 창작자가 갖는 저작권과 달리, 음반 제작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제작자가 갖는 저작인접권은 엄연한 회사의 자산이다. 스윙스는 120억 원 규모의 선급금 압박을 해결하고 레이블의 도산을 막기 위해 마스터권을 매각했으며, 그 대금 중 1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아티스트들에게 정산했다고 밝혔다.
스윙스는 저스트뮤직 설립을 시작으로 인디고뮤직, 위더플럭 레코즈, 마인드필드 등 힙합 신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굵직한 레이블들을 연이어 성공시켰고, 현재는 이들을 하나로 통합한 지주회사 AP 알케미를 이끌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이 산하 레이블들을 거쳐 가거나 현재 몸담고 있는 래퍼와 프로듀서들만 헤아려도 수십 명에 달한다.
특히 스윙스와 8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노엘의 반응은 상징적이다. 노엘은 현재 논란을 두고 SNS에 "연예인 표준계약서상 계약 종료 후 2~3년 정산이 대부분인데 평생 정산을 해준다는 건 우리 회사가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라며 "당연한 일이 아님에 스윙스 형에게 항상 감사함이 있다"는 글을 남기며 스윙스에게 힘을 실었다.
스윙스와 오랜 기간 함께했던 기리보이도 관련해 글을 남겼다. 그는 "(마스터권을) 팔겠다는 논의 때 나는 내가 쌓아온 것들을 팔 생각이 없었지만,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걸 이해해서 동의했고 당시에는 스윙스를 미워했다. 돌아가서 안 팔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안 팔 거다. 그 곡들이 나에게는 너무 중요하다"며 "나도 일을 해보니 그 형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고 '그 형도 이럴 땐 이렇게 힘들었겠구나.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자고 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것들도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지금 별생각 없고 그 형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리보이의 입장은 분명 단순한 옹호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자신이 쌓아온 음악적 자산이 정리되는 데에 대한 상실감과, 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대표의 사정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 복합적인 감정이 함께 담겨 있다. 다만 이 진술이 힙합 팬들의 전폭적 공감을 얻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 기리보이가 글을 올린 지 몇 시간 만에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한 일 역시 이런 반응과 완전히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힙합 신의 기류 역시 빅나티보다 스윙스 쪽에 조금 더 기우는 모양새다. 스윙스가 과거처럼 빅나티의 도발에 '컨트롤 비트'를 꺼내 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어 보인다. 랩 배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그 비트를 다시 호출하지 않은 것은, 이번 사안을 예술적 대결의 프레임으로 끌고 가지 않겠다는 판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는 장르 팬들의 입맛은 씁쓸하다. 이센스와 개코가 예술가의 태도와 자존심을 걸고 맞붙었던 과거의 '컨트롤 대전'과, 폭행의 진위와 권리 문제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지금의 사태는 같은 선상에 놓기 어렵다. 한때 디스전은 힙합이 스스로의 미학과 긴장감을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인지 문득 악뮤 이찬혁이 '쇼미더머니' 무대에서 읊조렸던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라는 한마디가 다시 뇌리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