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을 노리는 빈티지 크리에이터, 코르티스 [K-POP 리포트]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6.04.23 09:19
코르티스는 유행을 좇기보다 트렌드가 자신들을 쫓아오도록 만들겠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고유의 세계를 쌓아나갔다. 이들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프로듀싱, 안무, 영상, 가사까지 멤버들이 함께 고민하고 만들며 자생력을 돋보였다. 특히 빈티지 문화를 중요한 동력으로 삼아 자신들의 예술관을 마음껏 뽐내며 세계 정상을 노리는 크리에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사진제공=빅히트뮤직 

걸·보이 그룹을 향한 오랜 편견 중 대표적인 건 ‘남의 곡을 받아 부르고 춤추는 집단’이다. 남의 곡을 받는 게 잘못됐거나 대수로울 일이 아님에도 한때 국내 대중음악계에선(특히 근엄한 평단에서) 그걸 치부 아닌 치부로 여기는 시선들이 있었다. 타인의 곡을 해석해 들려주는 이보다 자기 곡을 만들어 들려주는 사람을 우위에 두던 저들이 지지한 아티스트에게 1950년대 프랑스 영화 비평계는 ‘작가주의’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얼핏 거창해 보이지만 저 말을 아이돌 케이팝계로 가져와 쉽게 풀어보면 결국 ‘퍼포머가 크리에이터로서도 인정받겠다는 의지’가 된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랩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직접 자신들의 생각, 철학을 음악에 담겠다는 것. 즉 우리 것은 우리가 만들겠다는 얘기다.

치부는 아닐지언정 그렇다고 기본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 퍼포먼스를 입혀 나가는 아티스트와 남이 제공한 콘텐츠에 자기들의 존재를 새기는 아티스트를 같다고도 보면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물리적으로나 태생적으로나 전자 쪽이 노력과 재능을 더 요구하기 때문이다. 설령 저러한 가치 기준을 차치하더라도 앨범 ‘아리랑’으로 데뷔 13주년을 자축한 BTS나 2026년 코첼라 무대에서 20년 된 그룹의 저력을 다각도로 확인시킨 빅뱅 마냥, 굴레와 한계를 동시에 내포한 ‘7년 계약’의 사슬 안팎에서 자유롭길 원하는 케이팝 아티스트라면 누구라도 자체 제작의 가치는 거듭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하이브의 세 번째 보이그룹 코르티스는 곧 전기영화로 다뤄질 마이클 잭슨이 그랬듯, 크리에이팅이 결부된 퍼포머만이 오래 갈 수 있고 또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팀이다.

사진제공=빅히트뮤직

코르티스는 시작부터 자생력이 돋보였다. 마냥 유행을 좇는 게 아닌, 트렌드가 자신들을 쫓아오도록 만들겠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들은 너바나에서 켄드릭 라마, 저스틴 비버에서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까지 너르게 참고하며 고유의 세계를 쌓아나갔다. 자신들의 세계 구축을 위해 코르티스가 꺼내든 방법론은 브레인스토밍이다. 열여섯 나이로 빌보드 진출 곡(아일릿의 ‘Magnetic’과 투바투의 ‘Deja Vu’)들에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리더 마틴의 말대로 프로듀싱도 마틴이 중심을 잡을 뿐 혼자 다 해내는 게 아니듯, 안무나 영상도 이들은 늘 함께 고민해 만들고 심지어 가사 한 줄도 멤버들은 다 같이 모여 쓴다.

팀워크를 전제한 즉흥, 즉석의 결합물인 이들의 창작 방식은 얼마 전 발표한 새 싱글 ‘REDRED’의 생활밀착형 뮤직비디오에서도 충분히 감지되었다. 19년 전 MGMT의 ‘Kids’가 들려준 육중한 일렉트로 팝 사운드를 중심에 담은 ‘REDRED’는 솔직함이라는 팀의 핵심 가치와 사차원 유머라는 그룹의 중요 정서를 새삼 강조했다. 5월에 발매할 그룹의 두 번째 미니 앨범 ‘GREENGREEN’의 타이틀 트랙인 이 노래 뮤비를 통해 코르티스는 대기업 기획사에서 길거리 DIY 정신으로 무장한 자신들의 당돌한 예술관을 마음껏 뽐냈는데, 특히 지난 곡 ‘FaSHioN’에서 강조한 구제 쇼핑의 즐거움을 고깃집과 오락실로까지 확장하는 장면에선 이들이 빈티지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케 했다.

사진제공=빅히트뮤직

빈티지는 코르티스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동력이다. 마틴이 흠모하는 인물로 알려진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1993년 8월 캐나다 머치뮤직(MuchMusic)과 나눈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중고 상점에 가서 작은 보물을 발견하는 일은 큰 기쁨입니다. 내가 그걸 살 수 있을지, 내가 정말 뭘 찾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그 물건은 원래 가치보다 특별하게 느껴지죠. 천 달러를 들고 상점에 들어가 가게 전체를 다 사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요.” 커트의 이 빈티지 이론에 공감한 마틴은 위버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명예라는 건 꼭 유명세만이 아닌, 어떤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무언가를 남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소수의 중심점이 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어떤 문화가 퍼져나가고, 무언가를 바꿔보고 싶은 욕심 같은 게 있거든요.”

언젠가 커트가 구제 옷가게에서 사 입은 올리브색 카디건이 경매에서 4억여 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 나아가 1992년 1월 11일, 미국의 ‘깡촌’ 중 하나인 애버딘 출신 무명 로커가 천하의 마이클 잭슨을 끌어내리고 빌보드 차트 정상에 선 일은 어쩌면 그 자체 그런지(Grunge)라는 빈티지 문화의 승리였을지 모른다. 자작돌 또는 영 크리에이터의 새로운 경지를 펼쳐가고 있는 마틴과 코르티스가 바라는 ‘빈티지한 명성’이란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싶다.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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