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성시경이 본업으로 돌아왔다. 훨씬 갸름해진 턱선과 가벼운 몸매, 트레이드마크 같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보이스로 컴백했다. 지난 연말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콘서트를 진행했고, 5월엔 봄 축제 ‘축가’를 개최한다. 5월 2∼3일과 5일의 사흘간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다.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지난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2년 만의 무대다.
성시경은 한동안 ‘딴짓’을 하고 있었다. 마이크 대신 젓가락을 잡았다. 코로나19로 우울했던 시기인 2020년, 안 한다고 했던 유튜브 채널 ‘성시경’을 오픈했다. 처음엔 여기에 노래를 실었다. 가수니까 당연한 콘텐츠다. 현장에서 만날 수 없는 팬들을 그리워하며 ‘성시경의 부를텐데’로 자신의 노래 영상을 게시했다.
그러나 정작 팬들이 주목한 것은 서브 콘텐츠 격인 ‘성시경의 먹을텐데’였다. 30일 기준 유튜브 ‘성시경’의 구독자는 226만 명, 게시 동영상은 980개. 그런데 980개 중 224개가 ‘먹방’으로 채워져 있다. 이를 포함해 전체 누적 조회수는 무려 13억 회가 넘을 만큼 인기가 높다.
메뉴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어떤 날은 잠원동에 있는 한신치킨호프에서 닭다리를 뜯고, 어떤 날은 삼각지의 노포인 삼각정에서 돼지고기를 굽는다. 프랜차이즈 버거킹의 신메뉴, 명동 중식당 행화촌, 논현동 청석골 등 알만한 사람은 아는, 그러나 모르는 사람에겐 지극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다양한 맛집을 찾아다닌다. 이 ‘먹방’들은 한번 올렸다 하면 조회수 50만 정도는 거뜬히 달성한다. 100만 클릭이 넘는 것도 부지기수다. 최고는 무려 835만 조회수를 기록한 대전 태화장 1편.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한창 화제의 인물일 때 게스트로 함께 했다. 이밖에도 신동엽, 싸이, 하정우, 주지훈, 임지연 등 수많은 스타들이 ‘먹방 파트너’로 출연해 수백만 클릭수를 기록했다. 연예계 주당으로 익히 알려진 성시경과 먹방의 하모니. 사람들은 멋지고 근사한 발라드 가수가 소박한 국밥집에서 맛있는 한 끼를 해결하는 모습에 친근함과 흥미를 느꼈고, 그가 추천하는 맛집에 무한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면, 회가 거듭될수록 뽀얗게 살이 오르는 성시경의 얼굴. 감미로운 발라더를 포기라도 한듯 어느새 그는 푸드 파이터에 가까워졌다.
그러다가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 ‘2025 성시경 연말 콘서트’를 열면서 본궤도로 회귀했다. 사실 이때도 콘서트를 치를 정신은 없었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매니저 A씨가 공연 티켓 등의 횡령 혐의로 제3자에 의해 고발당했기 때문이다. A씨는 암표를 단속한다며 성시경 공연의 VIP 티켓을 빼돌리고 이를 통해 수익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결국 성시경과의 인연을 끝내야 했고, 성시경의 소속사 에스케이재원도 "성시경 전 매니저가 재직 중 업무 수행 과정에서 회사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당시 성시경의 마음은 아마 타들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10년 넘게 함께 일한 매니저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고 금전적 손해까지 입었으니 당초의 계획을 이어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성시경은 SNS에 "최근 몇 개월은 괴롭고 견디기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믿고 아끼고 가족처럼 생각했던 사람에게 믿음이 깨지는 일을 경험했다"고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심 끝에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고, 예정된 콘서트 무대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지난 3월 27일부터는 KBS 2TV 뮤직 토크쇼 ‘더 시즌즈’ 아홉 번째 시즌에서 MC로도 활약하고 있다. ‘성시경의 고막남친’이라는 타이틀로 단단한 팬덤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 24일까지 5회가 방송됐는데 반응이 심상치 않다. 금요일 심야 시간대인데도 시청률 1% 안팎을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후로 시들해졌던 심야 음악방송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성시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보기 좋게 다이어트를 하고 등장하고 있다. 예리한 턱선이 보이고, 안경 너머의 눈동자도 ‘먹방’의 푸근함보다는 시니컬하게 반짝여 반갑다. 인터뷰를 리드하는 솜씨도 여전하다. 게스트들이 가수 선후배인 점을 고려해 때론 선배처럼, 때론 후배처럼 격의 없이 다가간다. 충분히 예의를 갖추되 한두 번씩 툭툭 던지는 반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같은 가수로서 출연자와 곡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어려운 것도 쉽지 풀어 전달한다. 출연자와의 ‘밀당’(밀고 당기는) 토크는 스릴과 재치가 넘친다.
출연자들의 면모도 한몫한다. 1회 김조한·정승환을 비롯해 윤종신, 이재훈, 화사, 로이킴, 악뮤, 정인-조정치, 거미, 승관 등 노래 잘하는 실력파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고막남친’이란 제목에 걸맞게 이들이 들려주는 부드러운 멜로디는 아이돌과 트로트, 혹은 서바이벌 경연대회곡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묘한 안식을 준다. 심지어 이들과 성시경이 듀엣으로 보여주는 무대에서는 감탄과 함께 박수가 절로 나온다. 아무리 리허설로 미리 입을 맞췄다지만 "그래 성시경은 최고의 발라드 가수였어"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완벽한 화음으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동안 이효리, 이영지, 박보검, 십센치 등이 MC를 할 때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런 그림은 성시경만이 가능한 구도 같다.
1979년생이니까 올해 47세. 2000년 사이버 가요제로 데뷔했으니 벌써 26년 경력의 베테랑. 성시경의 먹방도 좋지만 역시 그의 본업은 ‘노래방’이다.
이설(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