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무싸' 위로란 장르를 만들어낸 박해영 작가를 추앙해 [드라마 쪼개보기]

최영균(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05.04 11:43
박해영 작가는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거쳐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까지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시청률이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시청자들에게 인생 드라마로 추앙받으며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했습니다. 특히 '모자무싸'에서는 황동만과 변은아의 관계를 통해 불안과 무가치함을 극복하고 평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며, 위로라는 새로운 드라마 장르를 만들어냈습니다.
사진='모자무싸' 방송 영상 캡처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는 고정팬을 보유한 박해영 작가의 신작이다.

박 작가는 ‘또 오해영’으로 시작해 관심을 모은 후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를 거치면서 한국 드라마 계에서 커다란 존재감을 갖게 됐다. 작품들의 시청률은 5%(이하 닐슨코리아) 전후, 때로는 2~3%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하지만 매 작품을 ‘인생드라마’라 ‘추앙’하는 시청자들을 양산하는 독보적 위치에 올라 있다.

그렇다고 마니아 드라마로 규정될 만큼 애청자 층이 좁지도 않다. 박 작가의 작품 세계에는, 다른 드라마에서는 만나기 힘든 사람들과,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밀도 있게 감동적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아저씨’부터 ‘모자무싸’까지 세 작품을 모두 인생드라마로 꼽는 이들도 꽤 있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에서는(역시 전작만큼이나 명대사의 성찬이 이어지고 있는 ‘모자무싸’ 대사로 표현하자면) ‘얌전한 거지 만만하고 약하지 않던’ 이들이 행복을 찾거나 자존을 갖추기 위해 ‘갇힌 상태를 돌파’하려 애쓴다. 이런 내용에 공감하고 위로 받은 많은 시청자들이 박 작가의 작품을 칭송하게 됐다.

사진='모자무싸' 방송 영상 캡처 

‘모자무싸’는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려 시기와 질투로 좌충우돌하는 황동만(구교환)의 이야기다. 자신의 무가치함을 극복해 나가려하지만 불안에 시달리는 와중에, 자폭하고 싶은 상태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품어주는 변은아(고윤정)를 만나게 되면서 둘 모두 조금씩 나아진다.

황동만은 박 작가 전작의 주인공들보다 더 핀치에 몰려 있는 인물이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 주인공들은 침범해 들어오는 무례한 주변 사람들은 있어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인물은 아니었다.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실패한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황동만은 실패가 거의 확정된 상황에 있고 사람들 다수가 꺼릴 만큼 주위를 불편하게 만든다.

박 작가는 황동만이 ‘안정과 평온을 구할 자격이 없는지’ 묻는다. 시청자들 중에는 황동만만큼 지질하고 불편하게 굴지는 않더라도 황동만으로부터 공감대를 느끼는 측면이 있는 경우가 꽤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거 같은데 어떻게 조용히 있’을 수 있냐며 위악스럽게 구는 황동만과 비슷한 처지에 처해본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잘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때는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는 패악을 부리지만 불안해서 그런 것임을 ‘나약해서 나약함 냄새를 맡는 데 도가 튼’ 변은아는 알아본다. 황동만이 ‘공포에 쩐’상태임을 느끼고 ‘무능한’ 황동만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인데 인간적이지 않은 게 제일 무능한 거’라고 일침을 가하고 황동만을 감싼다.

사진제공=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황동만은 ‘날 좋아하는 인간은 내 불안을 잠재워, 칼 들고 설치지 않아도 돼…나를 파괴적인 인간, 괴물이 아님을 확인시켜주는 존재’라고 힘을 얻으며 자신을 추스른다. 황동만을 구원하는 변은아도 황동만을 통해 자신의 불확실한 고통의 실체를 점차 파악하고 돌파해 나가게 된다.

황동만을 불편하게 여기는 다른 이들도 결국은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모두’가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음이 드라마 전개와 함께 서서히 드러난다. 성공을 해본 그들도 이면에는 불안으로 인한 위악스러움이 있는데 황동만과 비교하면 좀 더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본다는 차이 정도다.

박 작가의 작품에서 행복(‘나의 아저씨’), 자존(‘나의 해방일지’), 평안(‘모자무싸’)은 타인과 함께 구하는 것이라는 특징이 있다. 수도승처럼 혼자 정진하고 사색하고 감내해서 도달할 수도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소중함을 느끼는 사람과의 관계가 구원에 이르는 희망이라는 시선이다.

박 작가 작품이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관심과 칭송을 꽤 받을 수 있는 것은 이런 관계성이 서사의 제일 요소인 점이 크다.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구체적 일들로 사변적일 수 있는 의미들을 다룰 때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모자무싸’에 와서 박 작가의 주인공은 불편함을 지닌 더욱 입체적 인물이 됐다. 황동만이 변은아로 인해 기가 살자 형 황진만(박해준)이 펀치를 날려버리는 장면은 관계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이 한 번에 쉽게 되지 않고 도달과 좌절을 반복해 전진하는 지난한 일임을 일깨우고 드라마 이후 전개도 더욱 요동칠 듯해 기대를 모은다.

사진제공=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박 작가는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숨죽이고 살지만 침해당하는데 드라마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던 현실의 여러 사람들에게 작품 속 인물들과 공감을 통한 위로를 전했다. ‘모자무싸’에 이르러 황동만같은 빌런스러운 인물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성공은 바라지도 않고 괴롭지만 않으면 좋겠어’라며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이들의 공감을 부르고 있다.

‘모자무싸’에서도 공감은 위로로 연결된다. 변은아와의 관계를 통해 조금씩 불안에서 벗어나면서 자신을 불편하게 느끼는 이들에게 ‘딱 니들만큼 불행하고 니들만큼 행복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황동만이 드라마의 대단원까지 얼마나 더 많은 위로를 전할지 기대를 갖게 만든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거쳐 ‘모자무싸’에 이른 박 작가 작품 세계를 아울러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위로가 아닐까 싶다. 다른 많은 세상의 드라마들과 박 작가 작품을 가장 구분하기 좋은 단어 역시 위로이기도 하다. 위로가 예술학 분류상 서사 작품의 장르 분류 명칭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박해영 드라마는 이제 위로라는 장르가 돼버린 듯하다.

최영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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