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 TV시대다. 특히 스마트폰과 OTT를 기반으로 한 ‘몰아보기’가 익숙한 시청 패턴이 되면서 주 1∼2회 방송되는 TV드라마에 대한 수요는 더 떨어졌다.
하지만 2026년 풍속도는 다소 다르다. 시청률 10%에 이어 20%가 넘는 드라마까지 줄이어 탄생되며 "결국 재미있으면 본다"는 공식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고 있다. 단 조건은 있다. 최근 성공한 드라마의 공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빠른 전개,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이다’다. 짧은 분량의 콘텐츠인 쇼츠에 익숙해지면서 기다리는 힘이 줄어든 대중이 답답한 전개를 기피하고, 속시원한 결말을 원하는 셈이다.
올해 방송된 미니시리즈 시청률 순위를 보자. 현재 4회까지 마친 SBS ‘김부장’은 단 2회 만에 2026년 최고 성적을 기록한 데 이어 4회가 21.6%를 기록했다. 20%대 미니시리즈가 탄생한 것은 ‘눈물의 여왕’(24.9%) 이후 약 2년 만이다.
MBC ‘21세기 대군부인’(13.8%), SBS ‘판사 이한영’(13.6%), tvN ‘언더커버 미쓰홍’(13.1%)이 그 뒤를 잇는다.
로맨틱코미디물인 ‘21세기 대군부인’은 차치한다면, ‘판사 이한영’과 ‘언더커버 미쓰홍’은 난관이 주어지고 주인공이 이를 하나씩 타개해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있지만, 결말까지 닿는 과정에 여러가지 미션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는 일종의 ‘도장깨기’라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은 ‘김부장’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북한 출신 북파공작원이지만 이제는 신분을 숨기고 딸을 키우는 평범한 아빠로 살아가는 김부장(소지섭)은 딸이 실종된 후 본모습을 드러낸다. 이게 가장 큰 줄기다. 그 과정에서 딸을 괴롭히던 학교폭력 가해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뒤를 봐주는 MZ조폭들도 처단한다. 김부장의 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호시탐탐 김부장의 위치를 파악해 그를 없애려 한다. 딸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 김부장의 위치가 포착되고, 그를 제거하기 위해 내려온 간첩과 한판 승부를 펼쳐야 한다. 또한 철저히 그의 신분을 숨기고 제압하려는 정부 요원들과도 맞서야 하는 처지다.
이런 흐름은 ‘판사 이한영’에서도 두드러졌다. 억울한 죽음을 맞은 후 10년 전, 충남지법 단독판사 시절로 돌아온 이한영(지성)은 정치계, 법조계 인사의 자녀가 연루된 병역 비리 장부를 입수해 비리를 폭로하고, 싱크홀 사건 주범을 포크레인으로 응징한다.
1990년대 세기말, 30대 엘리트 증권감독관 홍금보(박신혜)가 수상한 자금의 흐름이 포착된 증권사에 20살 말단 사원으로 위장취업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언더커버 미쓰홍’ 역시 홍금보의 정의구현 과정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이는 옴니버스 구성이라 할 수 있다. 회당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종결하면서 큰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이런 구조를 가진 대표적인 드라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유사한 흐름을 가진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캐릭터의 성격, 그리고 사건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를 가진 변호사가 갖은 사회적 편견 속에서 사건을 해결해가는 성장담을 제시한다.
이런 구조는 ‘김부장’과도 일맥상통한다. 김부장은 북한에 침투해 암살 임무까지 수행한 1급 요원이라는 설정을 통해 액션의 강도를 끌어올린다. 숨진 아내의 유언에 따라 딸을 키우기 위해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그가 딸이 사라진 후 딸을 찾기 위해 악을 하나씩 처단해가는 과정은 간결하고 매끄럽다. 대중이 소화하기 쉬운 드라마인 셈이다.
최근 글로벌 성공을 거둔 넷플릭스 ‘참교육’이야말로 이 공식을 충실히 이행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교권 추락의 시대, 교육부장관은 교권보호국이라는 기구를 신설하고 교권 감독관들은 문제가 발생한 학교로 가 잘못을 바로잡는다. 회차별로 새로운 빌런이 등장하기 때문에 어느 회차를 골라봐도 완결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대중에게 ‘사이다’와 같은 쾌감을 안겨줘야 한다. ‘참교육’은 학교 폭력 가해자, 비리 교사, MZ조폭, 악성 민원 학부모, 촉벌 소년들을 벌하며 절대적 지지를 얻었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폭력이 사용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법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결국 매가 약이라는 설정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결국 드라마는 판타지다. 현실이 아니라는 의미다. 현실 속 부진한 대처와 미흡한 처벌에 화가 난 대중에게 이런 사이다 드라마는 대리만족을 준다. 누군가는 "현실성이 없다"고 타박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현실성을 담보할 필요는 없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이게 현실"이라는 고구마같은 결과가 아니라, "이게 정의"라고 외치는 사이다같은 권선징악이다.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