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인· 시한부· AI...SBS 연프들의 기이한 코드들 [예능 뜯어보기]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08.27 09:33

지난해 '신들린 연애'를 시작으로 '내 남은 연애' '기이안 연애'까지 이어져

SBS는 최근 무속인, 시한부 경험자, AI 등을 소재로 한 기이한 연애 프로그램을 잇달아 선보이며 기존 예능의 틀을 깨고 있다. 이은솔 PD의 '신들린 연애'와 '내 남은 연애', 원승재 PD의 '기이안 연애' 등은 커플 성사보다 출연자의 성장과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변화는 장수 예능 위주의 내부 라인업에 대한 젊은 PD들의 반작용과 극한 설정을 요구하는 외부 시장 환경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나의 AI 파트너-기이안 연애’, 사진제공=SBS

지난 20일 방송된 SBS 예능 ‘나의 AI 파트너-기이안 연애’(이하 기이안 연애)의 한 장면. 방송 초반은 계속 방송인 기안84의 기가 막힌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서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데이트에 나서는 AI(인공지능) 휴먼 ‘가희’가 서빙 종업원의 손에 들려 태블릿으로 등장하자 웃었고,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자 창피한 마음에 또 웃었다.

그는 길가를 가다가도, 한강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다가도, 택시를 타다가도 마치 영정사진(?)처럼 앞에 매고 있던 태블릿의 존재를 자각하며 웃었다. 우리 중 많은 수, 불특정의 대중이 이러한 상황을 당한다면 이렇게 헛웃음을 웃지 않았을까. 마치 기안84의 이름 같기도 한 ‘기이안 연애’는 말 그대로 기이했다.

그런데 SBS의 최근 예능 프로그램,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자체 제작 ‘연프’ 이른바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 보던 시청자라면 더욱 ‘기이한’ 상황을 마주했을 터다. SBS가 가장 보수적이라 일컬어지는 지상파라는 플랫폼 위에서 마치 김연아가 빙판에서 트리플 악셀을 돌듯 다채로운 변주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이안 연애’는 그 최신판과 같다. 기안84와 MC이기도 한 방송인 장도연 그리고 배우 이유비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데이트 상대로 AI를 등장 시켜 시간을 보내는 관찰 리얼리티다. 관찰 예능이라고 보기엔 연애 당시의 다채로운 감정이 오가고, 그렇다고 연프라고 하기엔 계속 인간과 AI의 차이를 고찰하는 제작진의 시선이 드러난다.

당연히 처음부터 태블릿에 담겨 나오는 걸출한 외모의 AI 파트너의 모습에 놀라고도 신기함을 표현하는 출연자들은, 누구나 그렇듯 ‘입덕 부정기(좋아하는 마음을 거부해보려는 시기)’를 겪는다. 이미 예고편에서 공개된 것처럼 나중에는 이 파트너들에 상당 부분 마음을 의지하고, 이들이 실제 사람이 아닌 것에 마음 아파하기 시작한다. 장도연이나 이유비 등이 보이는 눈물은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혁신적이다.

'신들린 연애', 사진제공=SBS

마찬가지로 SBS의 이 혁신적인 도전은 2024년 하반기부터 시작됐다. 그 중심에는 2019년 입사해 시사교양국을 거쳤던 이은솔PD의 존재가 있다. 그는 2024년 6월 무당, 사주 점술가, 타로이스트 등 점사를 하는 이들의 연애를 다루는 ‘신들린 연애’를 연출했다. 마치 토굴을 연상하게 하는 결정의 장소 등도 이질적이었지만, 남의 운명을 예측하던 이들이 자신의 운명 앞에 흔들리는 모습은 큰 여운을 남겼다.

이PD는 곧바로 기이한 연프의 대를 잇는 ‘내 남은 연애’를 현재 연출 중이다. 출연자들은 과거 시한부를 겪은 적이 있거나, 큰 병을 앓았던 사람들이다. 림프종, 위암, 급성 골수성 백혈병 등 무시무시한 병명이 오가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과하는 것은 그런 과정에서 더욱 커진 삶에 대한 열망과 사랑에 대한 진심이었다. 이들은 호감이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큰 상처가 있던 과거를 통해 비슷한 처지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곤 했다.

‘기이안 연애’를 연출한 원승재PD 역시 넷플릭스에서 색다른 연프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2’를 연출했다. 그 역시 젊은 PD로 연프가 유행하던 시기에 PD의 꿈을 꾸었고, 조금 더 커플의 성사보다는 출연자의 성장을 중심으로 한 서사를 선보이고 있다. SBS의 이러한 도전은 이뿐만이 아니다. 연프 사상 처음으로 부모님을 같이 출연시키는 ‘합숙맞선’ 시리즈 역시 지난 1월 첫 시즌에 이어 지난 13일까지 시즌 2를 방송했다.

SBS의 이러한 ‘기이한 연프’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내부적으로는 적체된 예능 라인업에 대한 젊은 PD들의 반작용이라는 분석이다. SBS는 전통적으로 되는 아이템을 론칭하고 시청률이 연착륙하면 이 프로그램들을 ‘장수 예능’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끌고 가는 성향이 있다.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 ‘골때리는 그녀들’ 미운 우리 새끼‘ ’런닝맨‘ 등 기본 십수 년을 가는 라인업이 이를 증명한다.

'내 남은 연애', 사진제공=SBS

이렇게 새로운 아이템보다는 기존 아이템의 조연출로 예능을 접하는 PD들에게 새로움에 대한 갈증은 늘 있다. 여기에 시사교양국에서 넘어온 이은솔PD의 차별화된 시각은 SBS의 연프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외부적으로도 역시 변화의 모멘텀은 충분하다. 2010년대 후반 창궐하기 시작한 연프들은 코로나19 즈음을 거치면서 돌싱, 모태솔로 사람의 상황에 따른 차이, 국내와 해외 등 공간의 차이, 그리고 환승과 장거리 연애 등 연애 형태의 차이 등 수많은 변주를 주며 변화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거리를 좁히는 과정을 모두 소거한 ‘연애실험실’이라는 콘텐츠도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웬만큼 다른 설정, 그만큼의 극한 설정이 아니면 수용자들의 뇌리에 남는 게 전혀 없는 시대가 됐다. SBS가 무속인을 고르고 또한 시한부 경험자들을 고르며, 심지어는 인간이 아닌 AI를 등장시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만큼 다른 상황, 극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변화를 보려는 이유이며 연프의 핵심이 커플의 성사가 아닌 다른 환경과 사람들을 만나 변화하는 사람의 속내를 보기 위함인 것임에 대한 증명이다.

이러다가는 ‘기이안 연애’에서처럼 AI끼리 짝을 맺는 예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1대1이 아닌 2대1, 2대2로 커플을 맺어주는 예능, 혼인신고가 조건인 예능 등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듯 많은 상황을 제시하며 보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다. 연프가 그만큼 인기가 있는 이유는, 커플 결정 과정에서의 도파민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희로애락을 겪으며 성장하는 캐릭터의 모습이 어느새 내 모습 같은 ‘공감의 쾌감’이 있기 때문이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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