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장인들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131분의 추적극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09.10 11:27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의문이 추적하는 그날...진실은 어디에?
암살 사건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정론직필 기자들의 사명감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와 수많은 앙상블들이 빚어낸 연기 맛집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과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중심으로 시대의 진실을 추적했다.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등 주연 배우들과 화려한 조연진이 출연하여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의 몰입감을 높였다.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은 정교한 미장센과 사운드를 통해 1970년대의 야만성과 긴장감을 생생하게 구현했다.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 그리고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를 만든 시대극의 명가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이번엔 1974년을 겨냥했다.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과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 두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야만의 시대였던 그 시절을 낱낱이 복기한다. 과연 지금 세대는 약 50년 전 그 시대를 복기한 ‘암살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암살자(들)’은 무거운 근현대사에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의 외피를 입혀 몰입감을 높인다. 전국민이 TV 생중계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보던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대통령을 저격한 총성이 울렸다. 영부인이 쓰러지고, 행사를 위해 참석했던 여고생 합창단원도 쓰러졌다. 용의자는 이내 제압되지만, 오히려 그때부터 의문은 시작된다. 총성은 여섯 번 울렸지만 발견된 탄환은 4개뿐. 용의자가 제압된 이후에 총성이 울렸다는 목격자들도 있다. 과연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의 배후는 누구이고, 누가 진실을 숨기려 하는 건지, 영화는 131분 동안 달리기 시작한다.

사건의 진실을 쫓는 인물은 크게 기념식장 현장 경비를 맡았던 중부서 형사 철구(유해진), 그리고 동성일보 사회부장 재환(박해일)과 현장을 취재했던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로 압축된다. 그러나 진실이란 목표는 같지만 결은 조금 다르다. 철구는 초유의 사건으로 초토화된 중부서 동료들을 구하려는 뜨거운 목적이 있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했던 경찰의 자부심이 있었으나,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진실의 왜곡을 국가가 자행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뜨거운 울분이 있다. 인물들 중 유일하게 처자식이 등장하며 그 시절 가장이자 아버지의 입장도 지니고 있다.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재환은 ‘칼이 펜을 꺾던’ 검열의 시절에도 ‘정론직필(正論直筆)’이란 언론의 책무를 외면하지 않는 인물. 매일 위압과 폭력을 행사하는 서슬 퍼런 중앙정보부 요원들 앞에서도 그의 단단함은 꺾이지 않는다. 신입 기자의 패기와 재벌집 막내아들의 여유를 한 몸에 지닌 영일 또한 기자의 사명감을 불태우며 사건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부장과 신입의 차이는 있지만, 기자들의 모습은 뜨거운 가슴을 가지되 차가운 머리를 지녀야 하는 언론인의 덕목상 철구의 뜨거움과는 조금 다른 톤일 수밖에 없다.

사건을 파고들수록 아귀가 맞지 않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애초에 비표 없이는 들어갈 수 없던 기념식장에 들어가려던 용의자를 제지하던 철구는 달라진 경호 지침에 의해 제지당했고, 현장의 동선과 상황과 탄환의 궤적은 들어맞지 않는다. 사건 이후 양상은 더욱 기가 찬다. 조총련계 재일동포라는 용의자의 정체와 목적은 그가 자백하기도 전에 이미 수사본부에 의해 드러나고, 시급해야 할 현장 감식은 굳이 하루 뒤로 미뤄진다. 이런 일들을 추적해 드러나는 과정을 쫀쫀하고 치열하게 그리면서 관객의 의문과 궁금증은 배가된다.

다만 중반부 이후엔 이야기의 축이 바뀌면서 온도도 조금 달라진다. 앞서 말했듯 영화의 시작과 핵심 축은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이지만, 후반부는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집중되기 때문. 영화가 그려내는 유신시대의 야만성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하고 좇아야 하는 진실의 무게를 짊어진 기자들이라는 빌드업이 내내 있긴 하지만,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에서 언론인의 사명을 외치는 장면으로 옮겨갈 때는 지나치게 직관적이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치솟은 의문과 궁금증과 기대를 각자의 사유로 풀어내야 하는 마무리도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암살자(들)’은 관객들의 분노가 집중되는 대상이 있으면서 명확한 결론을 내는 ‘서울의 봄’과는 다른 영화다. 결론을 낼 수도, 결론을 내려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 것.

사진제공=하이브미디어코프 

지금 세대가 교과서 몇 줄과 뉴스와 자료 몇 컷으로만 알고 있는 1970년대를 생생히 구현해 관객을 오롯이 그 시절로 데려가는 정교한 미장센은 영화의 몰입감을 키우고, 음악과 사운드의 활용도 그 시절 분위기를 살리는 데 적절히 활용된다. 특히 철구가 의문의 남성을 추적할 때 구둣발 소리와 타자 학원의 타건음, 그리고 다른 공간의 기자들의 타자기 소리가 겹칠 때의 촘촘한 긴장감이란! 허진호 감독의 연출과 이모개 촬영감독, 이성환 조명감독, 김병한 미술감독, 조영욱 음악감독 등 제작진들의 노고가 돋보인다.

배우들의 노고 또한 두말할 것 없다.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라는 이름값은 충분히 발휘되는데,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 싶은 건 박해일. 배우의 평소 이미지와 특유의 단단한 목소리, 담백하고도 절제된 연기가 어우러져 정론직필을 고수하는 언론인 그 자체로 보일 정도다. 후반부 뜨겁게 피치를 올리면서 다소 급작스러울 수 있는 자유언론실천선언 장면이 그나마 무게추를 잡은 것도 박해일 덕분이다.

상반기 ‘왕과 사는 남자’에 이어 다시 한 번 흥행작 신호탄을 쏘려는 유해진은, 명불허전 유해진이다. 억울하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는 끈질긴 민초의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민호는 놀랍다. 그간 ‘로맨스 남주’로 주로 소비되었던 이민호는 드라마 ‘파친코’에서 시대극에 잘 어울리는 어른 남자로 성장했다는 걸 보여준 바 있다. ‘암살자(들)’에서는 젊은 패기와 재벌집 아들의 능글맞음을 맞춤옷처럼 입고 또 한 번의 성장을 드러낸다.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도 ‘암살자(들)’의 재미 중 하나.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외에도 철구 부인 역에 엄지원, 재환의 신문사 동료들로 배성우, 김대명, 류혜영이 나오고, 의뭉스러운 범인 문태광을 박정민이 연기하며 김장감을 선사한다. 그 외에 한국 영화판을 싹 쓸어온 듯, 이름난 배우들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등장해 놀라움을 안긴다. 김기천, 류경수, 박성훈, 박지환, 박해준, 박훈, 신현빈, 심은경, 엄태웅, 오달수, 오정세, 유성주, 유연석, 임원희, 장률, 정우성, 최유리 등등. 이민호의 형으로 분해 ‘투샷’을 기대하게 되는 ‘미남 형제’를 완성한 정우성은 무게감과 상징성이 필요해 캐스팅했다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한다. ‘서울의 봄’에 이어 또 다시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오는 23일 개봉해 추석 극장가를 노리는 ‘암살자(들’)’. 경쟁작으로는 한 주 앞서 개봉하는 ‘인턴’, 같은 날 개봉하는 ‘타짜: 벨제붑의 노래’와 ‘가능한 사랑’이 있다. 흥행은 며느리도 모를 일이지만, 확실한 건 영화를 보고 난 후 사건의 전말과 뒷이야기 등을 궁금해하고 검색하는 영화는 ‘암살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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