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배우들 중 스타가 되는 이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타고난 끼와 수려한 외모, 남다른 스타성에 운까지 따라주어 데뷔와 동시에 정상으로 급상승하는 ‘엘리베이터형’, 그리고 차근차근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며 입지를 다지는 ‘계단형’.
천부적인 자산으로 운명처럼 떠오르는 스타들을 곁눈질하면서도 묵묵히 제 보폭을 지키는 계단형 배우들의 동력은 다름 아닌 연기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이다. 정상에 오르겠다는 세속적인 목표보다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겠다는 순수한 열정,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그들의 궤적을 굳건한 우상향으로 이끈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이하 ‘타짜4’)의 주연 변요한은 전형적인 계단형 스타다. 2014년 드라마 ‘미생’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이후, 10여 년간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작품 속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업계 감독과 작가들이 입을 모아 신뢰하는 ‘실력파 배우’였을지언정, 대중성을 온전히 견인하는 독보적인 ‘한 방’의 흥행력에 있어서는 여전히 갈증이 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타짜4’ 속 변요한은 언제나 인생의 ‘끗발’을 쥐고 흔드는 장태영을 연기하지만, 정작 그의 실제 연기 인생은 피땀 흘려 바닥부터 기어오르는 노력형 인물 박태영(노재원)에 더 가깝다. 다만 그가 박태영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타인을 시기하고 갉아먹는 ‘자격지심’에 매몰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저예산 독립영화든 대작 텐트폴이든, 주연이든 조연이든 개의치 않고 주어진 배역에 온전히 몰입하며 관객과의 신뢰를 켜켜이 쌓아왔다. 감독의 부름을 어떤 트로피보다 귀하게 여기고, 손에 쥔 대본 한 권을 가장 소중한 훈장처럼 보듬어온 긍정적인 열정이 마침내 그를 이 자리에 올려놓았다.
충무로에서 20여 년간 독보적인 사랑을 받아온 범죄오락 프랜차이즈 ‘타짜’ 시리즈의 최종편, CJ ENM의 텐트폴 영화 ‘타짜4’의 타이틀롤 장태영은 변요한이 걸어온 노력의 결실이다. 영화는 모든 것을 내어줄 만큼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나락에 떨어진 한 남자의 묵직한 복수극을 그린다. 이번 역할을 위해 10kg을 감량한 변요한은 혼신의 열연으로 관객을 드라마틱한 복수의 여정 속으로 끌어들인다. 믿었던 이에 대한 뼈아픈 배신의 충격, 서늘하게 복수의 칼날을 벼리며 삼켜낸 절박함, 목숨이 오가는 도박판 한가운데를 질주하는 집념을 밀도 높게 형상화하며 관객에게 팽팽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평소 ‘케미 요정’이라 불릴 만큼 상대역과의 앙상블에 능한 변요한은 이번에도 독보적인 시너지를 발휘한다. 결핍과 열등감으로 뭉친 박태영을 날카롭게 빚어낸 노재원과 완벽한 대립각을 세우며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여기에 또 다른 복수를 꿈꾸는 가네코 역의 미요시 아야카와의 호흡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걸맞은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매력까지 거침없이 드러낸다.
변요한은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우직하게 신뢰를 주는 ‘영화배우’다. 대다수 배우가 상대적으로 유연한 제작 여건과 높은 개런티를 찾아 OTT 시리즈로 발길을 돌리는 현실 속에서도, 그는 ‘타짜4’를 필두로 최근 ‘경주기행’, ‘면도’, ‘손없는 날’을 연달아 작업하며 오롯이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경주기행’에서 특별출연 분량임에도 온몸을 던져 펼친 호연은 그가 영화라는 매체에 품고 있는 진심과 경외를 방증한다.
충무로 영화계 안팎과 오랜 시간 변요한의 성장을 지켜본 팬들이 ‘타짜4’의 흥행을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 배급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타짜4’는 시리즈의 전설인 1편의 아성에 직접 비견할 수는 없겠으나, 올 추석 극장가에서 성인 관객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웰메이드 범죄오락물로서의 본분을 충실히 다한다. 장르 특유의 쫄깃한 서스펜스와 서늘한 복수극의 쾌감이 또렷하게 살아있다.
물론 쟁쟁한 인지도를 자랑하는 스타들이 포진한 경쟁작들에 비해 화제성 측면에서 다소 열세에 놓여 있는 것은 현실적인 부담이다. 하지만 장태영이 판을 뒤흔드는 회심의 한 패로 승부의 판도를 뒤집었듯, ‘추석 극장가 대전’의 최종 승자는 뚜껑을 열기 전까지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변요한이 묵묵히 다져온 연기적 뚝심이 과연 ‘타짜4’의 가장 강력한 히든카드가 될 수 있을지, 올가을 스크린을 지켜보는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