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K직장인의 매력을 보여주는 배우 이준혁의 활약이 흥미진진하다. 로또 1등에 당첨되고서 일을 더 열심히 한다는 역설에는 헛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당첨금을 믿을 구석 삼아 ‘프로 일잘러’의 존재감을 떨치는 스토리는 시청자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바로 티빙 오리지널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극본·연출 윤영빈)다.
요즘은 로또 1등 당첨금 십여억 원으로 인생 역전은 불가능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사직서도 요원하다. 그러니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라는 제목은 너무도 수긍이 된다.
하지만 정말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까.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는 조금 다른 답을 내놓는다. 이미 주인공 공은태(이준혁)의 삶은 너무 달라졌다. 당첨금 13억원이 통장에 들어온 뒤 직장생활에서의 마인드 세팅이 완전히 새롭게 됐다.
본래 공은태는 회사에서 특별히 튀는 인물이 아니었다. 영업 5팀 팀장으로서 맡은 일을 정확하게 해내는 무난하고 모범적인 직장인이다. 팀장간 사내정치로 시끄러워도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굳이 자신의 능력을 뽐내지 않았다. 월급을 받고 회사를 다니는 삶에서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로 선을 긋고 살았다.
그런 그에게 로또 1등이라는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인생을 통째로 뒤집을 만큼 엄청난 부자가 된 건 아니지만, 통장에 찍힌 13억원은 당장 그에게 화를 내야 할 땐 내고,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 그 작은 심리적 여유가 사람을 달라지게 했다.
그때부터 그는 회사에서 해야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예전 같으면 참고 넘겼을 일에 자신의 의견을 내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선다. 중요한 것은 로또에 당첨된 뒤 갑자기 유능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원래부터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 능력을 마음껏 꺼내 쓸 만한 이유 혹은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당첨금 13억원은 공은태가 스스로의 능력을 새롭게 마주하는 기회이자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이유가 됐다.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2회 엔딩의 쿠키 영상은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당첨금으로 부동산을 사려고 알아보던 공은태에게 중개인은 월세로 연 7000만원을 받는 건물의 가치가 30억원이니, 연봉 7000만원을 받는 공은태의 몸값은 30억원이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연봉 7000만원만이 자신의 가치라고 여기며 살아온 사람에게 30억원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어쩌면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가 전하는 가장 짜릿한 깨달음이 여기에 있다. ‘내가 받는 돈’과 ‘내가 가진 가치’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또, 매달 통장에 찍히는 금액이 곧 자신의 값어치라고 생각하다 보면 그보다 훨씬 큰 가능성을 가진 자신을 발견하기 어려워진다는 메시지다.
공은태 역시 자신의 가능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13억원이 생기면서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새롭게 마주하고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3억이 없던 시절에도 일은 잘했던 걸 떠올리면, 달라진 것은 능력이 아니라 그를 억누르던 마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가 그리는 직장인 판타지는 의외로 현실적인 희망을 준다. 우리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는 것, 아직 제대로 된 기회를 만나지 못했을 뿐, 자신의 능력을 감춰두고 있을 뿐이라는 희망이다. 13억이라는 행운이 없더라도 언젠가 스스로의 가치를 알아보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는 작은 믿음이다.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는 이런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풀어낸다. 그 중심에서 이준혁은 특유의 정확한 연기로 주인공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전작들에서 검사, 비서 등 다양한 직장인 캐릭터를 거치며 어느새 안방극장의 ‘프로 직장러’가 된 이준혁답게 이번 공은태 역도 빈틈없이 매끄럽게 연기한다. 말 그대로 알잘딱깔센이다.
물론 저 비주얼의 남자가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설정이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런 비현실성마저 이준혁은 캐릭터의 매력으로 바꾼다. 조용히 자신의 몫을 해내던 사람이 마음먹고 움직이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데 부드럽다가도 날카로워지는 이준혁의 비주얼이 캐릭터와 찰떡같이 어우러진다. 특히 평소에는 적당히 참고, 알아서 맞추는 사람이 어느 순간 제대로 성깔을 드러낼 때의 쾌감이 상당하다.
이쯤 되면 당첨금이 아니라 공은태의 카타르시스 넘치는 직장생활이 부러워진다. 결국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에서 가장 통쾌한 순간은 로또에 당첨되는 순간이 아니다. 평생 남들이 정해놓은 월급과 직급으로 자신을 판단하던 사람이 뜻밖에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그 능력을 당당히 펼칠 때다.
상사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일을 저지르고 실력을 펼치는 공은태의 활약에 시청자들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13억원이 아니라 스스로의 값어치에 기대볼 수 있는 작은 믿을 구석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조성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