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꿈에 그리던 기업의 최종면접에 남은 지원자라고 가정해 보자. 당신에겐 의문의 봉투가 들려 있다. 그 안에 경쟁자를 탈락시킬 만한 비밀이 들어 있다면 당신은 열어볼 것인가? 단, 경쟁자의 손에도 나의 비밀이 담긴 봉투가 들려 있다. 영화 ‘최종면접’은 이처럼 세상 흥미진진한 설정으로 출발한다. 47개월 연속 청년층 취업자 수 감소 중인 대한민국에서 결코 외면하기 힘든 설정이기도 하다.
‘최종면접’에서 5000: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글로벌 IT기업 ‘스피라 링크스’ 최종면접에 남은 지원자는 여섯 명. 회사는 최종면접으로 팀 토론을 준비시키면서, 결과에 따라 전원 합격도 가능하다는 언질을 준다. 문혜인(조이현), 한진우(김재원), 백승빈(신승호), 이희찬(강유석), 전요한(곽동연), 차주원(배강희)은 전원 합격해 입사동기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한 달 동안 토론을 준비하며 우정을 다진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갑작스레 합격자는 단 한 명뿐이란 비보가 전해진다. 심지어 최종면접 당일, 여섯 명이 직접 제한 시간 2시간 동안 토론을 거쳐 합격자를 뽑으라는 과제가 떨어진다.
처음엔 모두 진지했다. 토론 이후 30분마다 공개 투표를 해 누적된 결과에 따라 합격자를 정하자는 룰을 정하며 나름 정정당당하게, 공정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변수는 첫 투표 이후 발견된 의문의 봉투. 무심코 연 봉투에서 운동선수 출신 백승빈이 학폭 가해자였다는 폭로와 함께 관련 신문 기사가 나온다. 당사자는 부인하지만 무척이나 자극적인 폭로이고, 당연히 합격자를 가리는 투표에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더 자극적인 건 여섯 명의 이름이 적힌 봉투엔 각자 타인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것. 이미 의문의 폭로를 당한 사람은 혼자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아직 봉투가 열리지 않은 사람은 자신에 대한 어떤 폭로가 밝혀질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동시에 진실이든 아니든 비밀이 폭로된 타인의 몰락은 곧 나의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나 빼고는 다 죽어야 살아 남는 ‘취업판 오징어게임’인 셈이다. 물론 더 이상 봉투를 열지 말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각자도생(各自圖生)이 디폴트가 된 무한경쟁 시대에 그런 의견이 순순히 먹힐 리 없다.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이란 일본 추리소설이 원작인 ‘최종면접’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발발했던 2020년의 최종면접장과 6년이 지난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때 최종면접장에 의문의 봉투를 둔 범인은 누구인지, 과연 최종합격자는 누가 됐을지를 추리하면서 동시에 6년이 흐른 지금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날의 일을 되짚으며 진실을 쫓는 것. 현재 시점에서 그날의 진실을 쫓는 이는 당시 최종합격자인데, 그 또한 관객에게 쉬이 알려주지 않으면서 궁금증을 키운다.
‘최종면접’은 과연 저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입해 보게 되는 현실적인 상황 설정과 묘사가 인상적인 영화다. 영화 속 대사에 나오는 달의 뒷면처럼, 모든 사람에겐 다른 사람이 결코 알 수 없는 자신만의 뒷면이 있다. 그 뒷면이 밝혀졌을 때, 과연 사람과 사람 간의 믿음과 우정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뒷면을 마주하면서 사람은 어디까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 영화는 극중 인물들을 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곱씹고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 게 아니야. 믿어지는 게 진짜가 되는 거지”라는 메시지도 의미심장하다. 봉투 속 폭로에 휘말리는 지원자들의 모습에서 유명 인사는 물론이고, SNS를 통해 평범한 일반인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 조리돌림 당하는 현실이 오버랩되거든. 무한경쟁 시대에서 ‘공정’을 시대 정신으로 여기는 청년 세대의 기이한 공정 감각 또한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의 묵직함과는 별개로, 이 영화의 얼개가 추리극이라는 거다. 서사의 과정을 얼마나 쫀쫀한 긴장감으로 끌고 가느냐가 관건인데, 안타깝게도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 그날의 최종면접장을 비추는 전반부 몰입감은 상당하지만, 후반부 들어 반전에 반전을 그리는 과정에서 사족이 많아도 너무 많다. 모든 것을 이해시키려는 설명조의 대사는 긴장감을 떨어뜨리며, 그 와중 문혜인과 한진우의 로맨스는 감정적 빌드업 없이 과도하게 그려져 뜬금없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아쉬움을 상쇄하는 건 조이현, 김재원, 신승호, 강유석, 곽동연, 배강희까지, 지금 주목받기 시작한 라이징 배우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추려 모았을까 감탄하게 되는 라인업. 폭로가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얼굴을 달리하는 젊은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D.P.’ ‘환혼’ ‘약한영웅 Class 1’ 등을 거쳐 올해 영화 ‘짱구’ ‘부활남: 더 레드’에 이어 ‘최종면접’으로 관객을 만나는 신승호의 선 굵은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고, 연기 잘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곽동연의 호연엔 박수를 보내게 된다.
‘폭싹 속았수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서초동’ 등 착실하게 롤을 넓히고 있는 강유석의 익숙한 듯 새로운 얼굴도 반갑다. ‘더 글로리’의 어린 이사라로 눈도장을 찍었던 배강희는 스크린 데뷔작이란 사실이 놀라울 만큼 안정적인 연기를 펼친다. 그에 반해 이야기를 이끌어야 하는 조이현의 경직된 연기와 맑고 반듯한 얼굴엔 신뢰가 가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김재원의 연기는 꽤 아쉽다.
지난 10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을 통해 첫 공개된 ‘최종면접’은 11월 4일 개봉한다. 과연 깐깐한 관객들의 최종면접을 통과해 흥행이라는 합격 통지를 받아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러닝타임 107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