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두 사람을 보는데 마음이 자꾸 자리를 바꾼다. 박민재(추영우)의 사정을 듣고 나면 붙잡는 손을 잡아주고 싶다가도, 임유진(김소현)의 이야기를 들으면 돌아서는 등을 붙들 수 없다. ENA 월화드라마 '연애박사'의 답답함은 그렇게 애틋함이 된다. 왜 저러느냐고 다그치기보다 저럴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헤아리느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민효정 작가가 쓰고 고(故) 안판석 감독이 연출한 '연애박사'는 10회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설렘과 다툼, 이별과 재회를 차곡차곡 쌓았다. 로봇공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복잡한 문제를 풀면서도 연인의 말 한마디는 제대로 읽지 못한다. 사랑하면 서로를 알게 될 줄 알았는데, 가까워질수록 모르는 마음이 더 많아진다.
제목과 달리 사랑에는 초보인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하는 방식마저 미숙해 상대를 아프게 한다. 민재에게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받았던 유진은 뒤늦게 이별 이유를 알게 됐고, 민재는 다시 시작하자며 유진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로도 버림받았다고 믿으며 1년을 고통 속에 산 유진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했다.
재회한 민재의 응원부터 어긋난다. 유진이 결혼한다고 잘못 알고 있던 민재는 지금의 선택이 맞다며 마음에 걸리는 것을 털어내라고 한다. 미련을 누르고 상대를 보내주려는 마음이었겠지만 유진에게는 또다시 자기 생각을 묻지 않고 관계를 정리하는 말이다. 한 사람에게는 배려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자기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태도가 된다.
민재의 의연함은 질투 앞에 무너진다. 유진과 수학과 교수 이지훈(장인섭)의 관계를 의심하고, 전화를 걸까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고, 둘이 사귀지 않는다는 말에 다시 만나자고 붙잡는다. 먼저 떠나놓고 다른 사람의 자리는 견디지 못하는 모습이 얄밉다. 그런데 바로 그 모양 빠지는 미련 때문에 사랑이 실감 난다.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그 행복 옆에는 자신이 있고 싶은 마음이다. 깔끔하게 물러서는 멋진 모습보다 질척이는 지질한 모습이 어딘가 더 애틋하다.
그렇다고 민재의 투병을 이별의 면죄부로 삼지는 않는다. 작은 상처를 주고 끝내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항변에는 자신의 선택을 납득시키려는 절박함이 있다. 죽음을 가까이 겪었던 사람에게 다시 찾아온 종양이 얼마나 두려웠을지도 짐작된다.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쉽게 나무랄 수 없는 이유다.
반대편의 유진 역시 한 가지 마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다른 여자에게 차이기를 바라던 그가 민재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한다. 미워하지만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살아 있어 다행이지만 다시 만날 수는 없다. 그 모순을 사랑이 식었다는 말로 정리하지 않는 점이 좋다. 이유를 알게 된 지금도 이유 없이 버려졌다고 믿었던 지난 1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너는 안 죽었는데, 나는 그때 죽었다고"라는 유진의 울분은 그 시간의 무게다. 민재의 사정을 들은 뒤에는 유진이 먼저 이해해 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남겨진 사람의 고통을 작은 것으로 밀어두지 않는다. 자신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설명이 자신에게 상처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민재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시청자도 유진의 말 앞에서는 멈추게 된다.
추영우와 김소현은 그 멈춤을 설득한다. 추영우는 민재의 해명에 억울함과 애절함을 함께 싣고, 다시 붙잡는 순간에는 앞서 세웠던 체면을 내려놓는다. 김소현은 유진의 거절을 차가움으로만 끝내지 않는다. 눌러온 말을 쏟고 눈물로 돌아서는 모습에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을 남긴다. 한 사람의 절박함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덮지 않기에 두 배우가 마주할수록 시청자의 마음도 거듭 흔들린다.
골육종과 다리 절단, 폐종양으로 이어지는 민재의 사연이나 명문대 연구실이라는 배경은 극적이다. 하지만 감정의 문턱은 높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면서 혼자 결정하고, 상처받기 싫어서 더 모진 말을 하는 모습은 낯익다.
빠른 해결을 바라는 이에게는 '연애박사'가 심심하고 답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물의 마음에 발을 들이면 그 답답함조차 함께 견디는 시간이 된다. 반전의 충격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다음 회를 보게 한다. 남은 두 회에서 궁금한 것도 재결합 여부만은 아니다. 이들이 혼자 결정하고 삼켰던 마음을 어떻게 함께 나눌지가 보고 싶다. 자극이 남기는 피로 대신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여운이 남는다.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취향일 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