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14년만에 돌아온 용산기지 “낯설지만 반가워”

조한송 기자
2019.04.10 12:00

1905년 일본군 주둔 이후 미군·대한민국 육국·북한군까지…100여년 역사 고스란히

투어버스에서 안에서 바라본 용산기지 출입문/사진=조한송 기자

“용산기지는 100여년의 역사와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는 곳입니다. 천천히 깊이 있게 봐야 보입니다.”

지난해 11월부터 114년만에 일반인에게 공개된 ‘금단의 땅’ 미군 용산기지. 이달부터 용산기지 내 주요 시설을 둘러보는 버스투어가 확대 시행됨에 따라 지난 9일 오후 국토교통부 출입기자단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용산기지를 미군이 만들었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은 일본군이 조성했다. 용산 미군기지는 1904년 일본이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용산 일대를 조선주차군사령부의 주둔지로 사용한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다.

일본군 사령부와 미7사단 사령부, 그리고 국방부 육군본부 등이 사용하는 동안 총 975개의 건물이 탄생했고 현재 각기 다른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다. 전체 크기만 243만㎡ 축구장 크기로 340개, 여의도와 맞먹는 규모다.

이날 버스투어 해설을 맡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 연구실장은 용산기지를 ‘담장 없는 야외 박물관’이라고 표현했다.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한국전쟁, 한미동맹 이후 한반도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위수감옥 정문. 담장 왼쪽에는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것을 입증하는 총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진=조한송 기자
위수감옥 내부 건물 환풍기.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문양이 표현돼 있다. /사진=조한송 기자

◇조선주둔 일본군부터 미군·육군·북한군까지

버스투어가 처음 향한 곳은 사우스포스트(SP)벙커.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방공작전실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광복 이후에는 미7사단 사령부 사무실로 사용되다 6·25전쟁 직전에는 대한민국 육군본부 정보국 작전 상황실로 쓰였다.

1950년 6월에는 북한군이 점령해 사용하기도 했다. 6·25 당시 한강교 폭파가 결정된 현장도 이곳이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동안 이곳에는 다양한 역사가 쌓였다.

위수감옥은 국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군 감옥이다. 1909년에 완공돼 감옥으로 사용되다 광복 이후에는 이태원 육군형무소로 사용됐다. 현재까지도 감옥을 둘러싼 벽돌담장과 내부의 일부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감옥 담장에는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총탄의 흔적이 있다. 김구 선생 암살범인 안두희와 시인 김수영, 정치가 김두한 등이 이곳을 거쳤다. 이외에도 버스투어를 통해 1970년대 지어진 주한미군사령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만초천변 돌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이 돌다리를 이용해 입영하고 퇴영식을 진행했다. /사진=조한송 기자

◇"낯설지만 반가워…보존돼 역사의 현장으로 남길"

이곳을 찾은 시민들의 얼굴에는 처음 둘러보는 용산기지에 대한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용산문화원에서 버스투어 소식을 듣고 관람에 참가한 김인숙(가명·55세)씨는 “이 좋은 땅을 오랜 기간 보지 못했다는 것에 가슴이 먹먹했다”며 “지금이라도 기지를 잘 돌려받아 후손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탄생하길 바란다”고 했다.

박성환(가명·67세)씨 역시 “처음 와보니 이상하고 낯설지만 반가운 마음이 든다”며 “기존 공간을 보존해 유산으로 남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용산기지 버스투어를 진행중인 이달부터는 차량을 증편해 확대 시행 중이다. 용산갤러리 관람 후 기지 내 주요 거점에 하차해 역사·문화적 장소를 둘러 볼 수 있다. 지난 9일까지 총 16회차의 투어가 진행됐으며 총 700여명이 용산기지를 다녀갔다.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은 지난해 말까지 ‘용산공원 조성계획 기본 설계 용역’을 진행했다. 하반기 시민 의견 등을 수렴하고 공론화 작업을 거쳐 조성 계획을 최종 확정 지을 계획이다

만초천변 옆 벚꽃길 /사진=조한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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