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전세 시대는 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2월 열린 '국정과제 세미나'에서 전세의 종말과 월세시대의 시작을 선언했다. "전세라는 것은 하나의 옛날의 추억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리고 두달 뒤인 4월 월세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총 동원된 '서민·중산층 주거대책'을 발표했다. 행복주택 등 공공임대주택과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등 민간임대주택을 당초 계획보다 5만 가구씩 더 확대해 총 30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게 골자였다. 천편일률적인 전세임대 방식에서 벗어나 임대주택 공급 다양화에 중점을 뒀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끝내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당시 전세난이 시급한 상황에 월세형 주택인 뉴스테이, 행복주택 확대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 세입자 입장에서도 전세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다달이 월 주거비를 지출해야 하는 월세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되려 정부가 '전세의 종말'을 부추긴다는 반발을 사면서 리모델링 지원, 전세대출 제한 등의 시도는 중도 포기 수순을 밟았다.
전세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임대차 방식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윈윈'하는 임대방식이었다.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인 목돈을 거치하고 그기간에 돈을 모아 내집 마련을 준비할 수 있었고 집주인들은 세입자에게 무이자 조건으로 목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매입하는 '갭투자' 가 탄생했다. 갭투자는 전세보증금을 이용해 소액으로 집을 매입하면서 추후 집값이 오르면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다. 갭투자 열풍은 최근 집값 급등세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따라서 매매시장 관점에서 보자면 전세의 종말은 갭투자의 종말, 집값 상승요인의 제거를 의미한다. 그런면에서 전세의 월세화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임대차 시장에서는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근로소득과 자산소득 간 격차가 심화된 가운데, 월세 부담이 증가하면 근로소득자만 힘들어진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1순위 정책 과제로 꼽으면서도 갭투자를 차단할 수 있는 전세 제도를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는 근본 원이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세 제도가 나쁘다, 좋다 판단할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무주택자들이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전세는 집값이 상승한다는 전제 하에서 성립되는 제도인데, 상승에 대한 이득을 집주인이 혼자 다 누리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세입자도 값싼 전세로 거주하면서 함께 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금리 인상기가 도래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전세대출 부담이 커진 세입자가 월세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다. 정부도 전세의 월세화가 연착륙 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월세 대책으로 올해 한시적으로 공제율을 12~15%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최고 공제금액 기준 약 15만원 늘어난다.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크지 않은데다 1년 한시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우리나라 주거 점유 형태 가운데 월세가구는 478만8000가구였다. 월세 공제를 받은 사람(53만7064명)이 전체 월세 가구의 약 11% 수준에 그쳐 대상 확대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