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국가에는 한국의 '용도지역제'와 유사한 토지 이용 제도가 있다. 그만큼 토지를 용도에 따라 나누고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다만 해외에서는 허용된 범위 내에서 용도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고 복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특정 지역에서는 유연하게 용도를 조정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일부 완화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성과를 내기까지는 더 오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는 용도지역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싱가포르는 복합용도지역제도인 '화이트존(White Zone·무규제 지역)'을 도입해 토지를 유연하게 운용하고 있다. 1995년 도입된 화이트존은 토지의 허용된 밀도 범위 내에서 개발사업자가 용도를 자유롭게 복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제도다. 공장 목적을 제외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개발할 수 있다.
쌍용건설이 호텔을 시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마리나베이 개발'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싱가포르는 노후화한 싱가포르항 항만 배후단지를 중심상업지구로 확장해 주거·국제업무·관광·복합단지를 조성하는 개발사업을 진행했다. 이때 허용된 범위 내에서 개발사업자가 용도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싱가포르는 또 BP-W(Business Park-White)존을 2000년 6월에 도입했다. 산업·과학단지에 상업, 주거, 호텔시설을 지어 지역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개발사업자와 투자자들에게 단지 내 토지의 유연한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서는 2014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업무계획 보고에서 싱가포르의 화이트존과 유사한 '입지규제최소지구(가칭)'을 도입하는 방안을 담았다. 2020년에는 3기 신도시에 화이트존을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지역의 계획에만 활용되거나 소규모 지역의 상권 조성에만 지정되는 수준에 그쳤다.
일본은 도심 개발을 위한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미이용 용적률 활용해 규모에 따른 용도 제한 해제 등 여러 완화책도 시행 중이다. 용적률을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용적률적용구역' 제도가 대표적이다. 도시계획으로 적용구역을 지정한 후 인접한 토지소유자들끼리 동의할 경우 미이용 용적률을 거래·이전할 수 있는 제도다. 일본은 이 제도를 역사적 건축물 보전, 지정구역의 고도이용촉진, 도시재생 촉진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1998년 도시계획법 개정으로 용도지역 내에서 특별한 용도에 대해 용도제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용도지구의 지정이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용도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하나의 규제만을 적용받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규모에 따라 용도가 다른 건물도 들어설 수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조경이나 용적률 등을 기본 법보다 완화해 적용하는 제도인 '특별건축구역 운영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사업별 특성에 맞게 조경이나 건폐율, 용적률, 건축물 높이 제한 등 건축기준을 완화해 특례적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일본의 '특별용도지구' 지정과 유사한 형태다. 현재 제도 도입 초기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