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일몰제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배경에는 여러 제도적 요인이 중첩돼 있다. 처음부터 일몰제 적용 대상에서 빗겨서 있는 아파트지구가 대표적이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구조 역시 혼란을 키우고 있다. 제도는 있지만 적용 기준은 제각각인 상황에서 일몰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아파트지구는 일몰제의 사각지대를 만든 대표적인 제도적 예외다. 정비사업 일몰제는 장기간 사업이 진척되지 않을 경우 정비구역을 해제해 재산권 침해를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아파트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애초부터 일몰제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다.
2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압구정, 반포, 잠실, 여의도 등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 10곳이 현재 '아파트지구'로 지정돼 있다. 아파트지구는 1970~1980년대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지정된 도시계획상 용도지구로 정비구역과 달리 지정 이후 별도의 유효기간 없이 지구 해제 전까지 효력이 유지된다.
정비사업 일몰제는 정비구역 운영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인 반면 아파트지구는 도시계획 차원의 용도지구로 법적 위계가 더 상위다. 이 때문에 두 제도가 충돌할 경우 아파트지구의 효력이 우선 적용되며 결과적으로 아파트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일몰제 적용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이로 인해 동일한 재건축 사업임에도 어떤 곳은 일몰제 적용을 받고 어떤 곳은 아예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다른 아파트 밀집 지역과 차별성이 사라진 지금 아파트지구는 존재 의미마저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 서울시는 이미 신규 아파트지구 지정을 중단하고 지구단위계획으로 전환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지구를 근거로 조합이 설립된 재건축 단지들은 여전히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제도는 사라졌지만 효력은 남아 있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지구를 근거로 조합을 설립 승인한 경우 아파트지구를 해제하면 그동안 추진된 사업이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게 돼 조합은 물론 사회적 손해도 발생하게 되는 기형적 구조"라며 "일몰제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제도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출발선부터 다른 적용 구조에 있다"는 평가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적용하는 구조도 문제다. 두 사업은 정비구역 지정 이후 재산권 제한의 성격부터 차이가 나타나지만 일몰제 적용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업계에서는 재건축 사업장에 일몰제를 일괄 적용할 경우 기한 도래 때마다 불필요한 혼란과 행정 공백만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개발의 경우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는 순간 개별 건축주의 개발행위가 제한된다.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 상가 소유자는 소규모 증·개축이나 다가구주택 신축을 통한 임대 수익 창출이 불가능해지는 것. 이 때문에 사업이 장기간 지연될 경우 재산권 침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재개발 지역은 정비구역으로 묶이는 순간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상태가 된다"며 "사업이 수년째 멈추면 그 기간 동안의 손실은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재개발 사업은 일정 기간마다 사업 지속 여부를 점검하고 해제를 검토하는 일몰제 취지가 들어맞는다는 평가다. 실제 일몰제 적용 이후 실제 정비사업이 해제된 사업장은 재개발 구역에서만 나왔다.
반면 재건축은 기존 아파트를 철거하고 다시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다. 아파트 한채를 보유한 상태에서 개별 소유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개발 행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비구역으로 묶이지 않았다고 해서 별도의 개발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은 조합을 통해 함께 가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하는 구조"라며 "재개발과 동일한 기준으로 일몰제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