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 예정지를 확정하면서 국내 소형모듈원전(SMR) 시장 기대감이 구체화하고 있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최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경북 영덕군에 대형 원전 2기, 부산 기장군에 SMR 1기를 각각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영덕은 2037~2038년, 기장은 2035년 상업운전이 목표다. 이중 기장 프로젝트는 국내 첫 SMR 상용화 사례로 향후 시장의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향후 발주될 영덕 원전과 기장 SMR 역시 기존과 유사한 수주 조건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원전 준공 실적을 보유한 기업만 대표사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하면서도 산업 기반 유지를 위해 미실적 업체의 참여를 의무화하는 형태다. 이 경우 대표사 지분은 과반을 넘어야 하고 참여사 역시 일정 지분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대표사 자격은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SK에코플랜트, 두산에너빌리티 등이 보유하고 있다. 업계는 이 구조가 컨소시엄 중심의 '3강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업계의 관심은 일찌감치 국내 첫 SMR 사업자로 누가 낙점될지로 모아지고 있다. 기장 SMR 사업자로 선정되면 국내 시장 선점은 물론 해외 시장 진출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가장 유력한 주자는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은 현재 미국 홀텍과 함께 미시간주 팰리세이즈 부지에 SMR 착공을 추진 중이다. 성사될 경우 세계 최초 SMR 착공 타이틀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영국 최초 SMR 건설을 위한 기술 경쟁 입찰에서 최종 후보로 선정됐고 국내에서도 기존 석탄화력발전소를 무탄소 에너지인 SMR로 전환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삼성물산은 유럽 SMR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폴란드 신토스그린에너지와 SMR 관련 연구에 협력하고 루마니아 SMR 프로젝트 초기 설계에 참여하며 개발·투자를 결합한 '디벨로퍼형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SMR 선도 기업인 뉴스케일파워에 이어 글로벌 SMR 기업인 GE버노바·히타치(GVH)와 협력하는 등 SMR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대우건설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5·6호기 수주를 기반으로 해외 원전 실적 확보를 앞두고 있다. 동시에 i-SMR, 고온가스로 등 차세대 원전 기술에도 참여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대우건설은 한국전력이 주관한 컨소시엄에 참여하며 SMR 분야 투자를 시작했고 한국이 2012년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한 SMR 모델에 대한 우선공급권을 확보한 상태다. 단순 참여를 넘어 사업 구조 설계 단계부터 관여해 왔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중견사와 미실적 업체는 일종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DL이앤씨가 대표적이다. DL이앤씨는 한빛 원전 5·6호기와 신고리 원전 1·2호기 주설비 공사 등 원전 건설 경험은 있지만 10년 내 건설 실적이 없어 미실적 사업자로 분류된다. SMR의 경우 전략적 지분 투자를 단행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DL이앤씨는 고온가스(HTGR) 기반의 SMR을 개발하는 기업인 엑스에너지에 직접 투자(약 2000만 달러)를 진행해 기술 파트너십을 맺었다. 아울러 국내 건설사 최초로 SMR 표준화 설계를 수주하는 등 글로벌 EPC(설계·조달·시공)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별도의 축이다. 국내 업체 중 원전 핵심 주기기 공급이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기업이다. 특정 컨소시엄에 종속되기보다는 원전 기기 공급과 관련한 별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수주 시점이 2030년 전후로 예상되는 만큼 향후 입찰 조건에 변수가 생길 여지가 충분하다"면서도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중심의 3강 컨소시엄 경쟁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