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원전 시공계약을 둘러싼 한국수력원자력과 대우건설·두산에너빌리티 컨소시엄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새 시공사 선정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한수원은 재입찰로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지만 설계 변경과 추가 공사비를 둘러싼 위험 분담 조건이 바뀌지 않으면 다른 건설사도 참여를 주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수원은 지난 29일 대우건설·두산에너빌리티 컨소시엄과의 시공계약 협상 종료를 공식화했다. 약 15개월간 협상을 이어갔지만 공사비와 계약 조건 등 핵심 쟁점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한수원은 2027년 7월까지 새 시공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남은 기간에 사업 수행 역량을 갖춘 업체를 찾고 계약 조건까지 조율해야 한다.
갈등의 핵심은 설계가 구체화되면서 늘어나는 공사 물량과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한수원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5·6호기 건설사업의 비용을 관리하려면 총액확정 방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공 컨소시엄은 설계를 직접 담당하지 않는 시공사가 설계 구체화에 따른 물량 증가 위험까지 떠안는 것은 과도하다고 맞섰다.
건설업계에서는 시공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맞춰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설계 변경을 직접 결정할 수 없는 시공사에 추가 비용까지 부담시키면 계약 당시 예상했던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공사 과정에서 늘어난 비용을 시공사가 먼저 부담한 뒤 협의나 소송으로 정산하더라도 자금 부담과 회수 불확실성이 남는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시공사가 통제할 수 없는 설계 변경에 따른 비용까지 무조건 책임지라는 것은 사업을 수행하는 입장에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이런 조건이라면 회사 입장에서는 수주 자체를 신중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체코 사업에 처음 적용되는 노형도 비용 예측의 변수다. 한국이 주력으로 건설해온 APR1400과 달리 체코에 공급하는 APR1000은 상업용으로 처음 적용되는 모델이다. 기존 원전보다 용량이 작다고 공사 물량과 비용도 같은 비율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설비와 구조물의 배치, 공사 범위 등이 달라지는 만큼 기존 시공 경험만으로 비용을 산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시공사를 교체하더라도 이런 불확실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국내에서 대형 원전 시공 경험과 수행 역량을 갖춘 건설사가 제한적인 만큼 재입찰 참여 후보군도 넓지 않다. 원전 사업 경험이 있는 업체들도 구체적인 입찰 조건이 나와야 참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입찰 공고가 나와 세부 조건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느 회사도 참여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기존 입찰 이후 사업의 기술적·실무적 내용을 검토하면서 추가로 필요한 사항이나 부담이 확인됐을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원전 사업은 발주처와 시공사의 관계가 중요한데 시공사가 발주처와의 관계를 감수하면서까지 문제를 제기했다면 그만큼 사업 수행 과정에서 부담이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입찰은 한수원에도 부담이다. 기존과 비슷한 조건을 유지하면 업체들이 참여를 주저하거나 입찰이 유찰될 가능성이 있다.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설계 변경과 추가 물량의 정산 기준을 보완하면 기존 시공단이 요구했던 위험 분담 방안을 다시 논의하게 될 수 있다. 업체 교체와 별개로 계약 구조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기존 시공단과 협상 재개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우건설·두산에너빌리티가 그동안 사업 내용을 검토하고 협상을 진행한 만큼 새 업체가 사업을 파악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시공사 교체에 따른 일정 부담과 계약 조건을 조정했을 때의 비용을 함께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원전은 매년 반복해서 수주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닌 만큼 한 번의 해외 사업 경험이 기업에 갖는 의미가 크다"며 "시공사에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국내 업체의 참여를 끌어내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국가 차원의 원전 수출 경쟁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