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선불충전금은 예금이다

김세관 기자
2021.08.11 03:50

간편결제를 위한 선불충전금이 어느새 2조원을 넘었다. 비대면 결제 시장이 급성장 중이어서 선불충전금 액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도 규제는 사실상 전무하다. 가이드라인을 통해 선불충전금을 은행 등 외부기관에 신탁하거나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라고 행정지도 하는 게 전부다.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금융기관이 망해도 인당 5000만원까지 예금을 보호해 주는 것과 다르다.

"선불충전금=예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간편결제·송금 업체들과 일부 금융당국자의 인식이 반영된 까닭이다. 이들은 충전 한도가 200만원에 불과하고 투자나 대출에 활용할 수 없다며 예금과 다르다고 강변한다.

다분히 행정편의적이고 사업자 중심적인 발상이다. 소비자들은 선불충전금이든 예금이든 간편결제 업체와 금융기관을 믿고 맡기는 돈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못 느낀다. 대출에 활용되든 말든, 이자를 주든 말든, 맡겼다가 쓰고 남을 때 안전하게 돌려받는 게 중요하다.

국내에선 빅테크(=IT대기업)가 결제시장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혁신'이란 명분 아래 느슨하게 규제하지만 해외는 다르다. 빅테크 규제의 글로벌 흐름은 소비자 편익보다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다. 금융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빅테크 기업 자체에 대한 규제가 대세다.

바젤위원회는 지난 3월 빅테크의 잠재적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기관 중심의 감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은 금융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빅테크를 직접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동일한 기능에 대해 동일한 규제를 하겠다는 취지다.

한국은행은 지난 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빅테크의 출현과 금융 부문의 디지털 전환이 기존 시장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리스크가 나타날 것이라며 금융당국이 사각지대를 없애고 소비자 보호가 저해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빅테크에 대해 규제를 깐깐하게 하지 않는 저변에는 '빅테크가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빅테크 역시 흥망성쇠를 피할 수 없는 기업이다. IMF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거대 은행이 망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금융서비스를 하는 빅테크에 대해 금융기관 수준의 감독을 하는 건 긴요하고 또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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