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은행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더이상 ELS(주가연계증권) 불완전판매와 같은 대규모 소비자 권익침해 사례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2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20개 은행장 및 은행연합회장과의 간담회에서 "앞으로 금융 감독·검사의 모든 업무 추진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원장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흔들리지 않는 대원칙'으로 두겠다며 "은행권에서도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스스로 책임있는 영업문화를 정착시켜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이 원장은 "은행권이 책무구조도 운영, 고난도 투자상품 판매 관행을 개선해 '사전 예방적 소비자 보호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라며 "금감원은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든든한 파수꾼으로서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금감원은 사전 예방적 소비자 보호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관련 TF(태스크포스)를 설치할 예정이다. 금감원 기획·전략 부문 내 감독총괄국을 중심으로 금융소비자보호처 산하 금융소비자보호총괄국과 각 부문 감독국이 참여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 원장은 지난 20일 첫 임원회의에서도 "모든 업무에서 소비자 보호를 연관해 생각해보라"라고 주문했다. 지난 26일 끝난 금감원 업무보고에서도 기획, 은행, 금융투자 등 부문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부회장과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지내며 시민사회와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주주나 노동자 보호를 강조해온만큼 소비자 중심의 정책을 펼칠 가능성에 금융권은 주목하고 있다.
아울러 이날 이 원장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와 더불어 △내부통제 강화 △생산적 금융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확대 △가계부채 관리 △은행 산업 혁신 등 6개 과제를 제언했다.
내부통제와 관련해서는 "은행에서 개인정보 유출, 횡령이 발생한다는 것은 자물쇠가 깨진 금고와 다를 바 없다"라며 "근본적인 내부통제 강화가 요구된다"고 짚었다.
주택담보대출 등 부동산에 집중된 자금을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 원장은 "담보와 보증 위주로 손쉬운 영업 관행을 지속하면 경제 주체 모두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라며 "지금이라도 미래 산업의 성장 토대인 생산적 부분으로 자금을 흘려보내느냐가 미래를 결정짓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해서도 금융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 9월 종료 예정인 코로나19 피해 차주에 대한 만기연장과 관련해 개별 은행들이 마련한 관리방안을 충실히 이행해달라"고 주문했다.
가계부채 총량 관리도 언급했다. 이 원장은 "가계부채 위험 변수가 상수화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업무를 개편해야 한다"라며 "DSR 규제 등 상환능력 중심 대출 심사와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 더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끝으로 은행 산업의 혁신과 관련해서는 AI 기술 활용과 해외 진출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초개인화 금융서비스를 통해 금융의 저변을 확장해야 하며, 블록체인 등 IT 관련 혁신 역량을 지속 개발해야 한다"라며 "해외 진출을 통해서는 현지 기업과 협력해 인프라 또는 ESG 금융 등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은행권에서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위반에 따른 금전제재 중복 부과(과징금, 과태료)와 관련한 은행권 우려사항을 전달했다. 금감원은 이르면 다음달 홍콩 H지수 ELS 판매 은행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안건을 제재심의위원회에 부의한다. 최근 금융당국은 '판매 수수료'가 아닌 '판매금액'으로 과징금 기준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은행권 ELS 판매 규모가 약 16조원에 달하면서 과징금 규모가 수조원대로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태료는 금소법상 위반 행위에 대해 건별로 부과 가능한 행정벌 성격으로, ELS 불완전판매 계좌 수와 건당 부과액을 고려하면 수천억원 수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