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금융회사란 특수성 때문에 상장회사란 점을 잊는 것 같다."
국내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상장회사면 상법에 따른 절차를 지켜야 하는데, 사람들이 이 점을 망각하는 것 같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선진화 TF(태스크포스)를 꾸리고 금융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압박하는 가운데, 최고경영자(CEO) 연임 특별결의제 도입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문제는 특별결의를 강제할 지배구조법 개정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지주들의 선제적 도입을 주문하고 있단 점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좋은 일이라고 판단되면 미룰 이유가 없다"며 "은행권이 먼저 지배구조 혁신에 과감히 나서달라"고 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금융지주의 CEO는 주총의 특별결의로만 연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주요 금융지주 중 주총일이 가장 빠른 KB금융지주는 6주 전인 지난 11일 주총 안건 제안을 이미 마감한 상태다. 나머지 금융지주도 비슷한 상황이다. 법안이 통과되기는커녕 발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3월 주총에 정관 변경 안건을 올리는 것이 절차적으로 어려운 이유다.
근거가 명확치 않은 상황에서 주주들을 설득하기도 어렵거니와 정관을 변경했다가 주주들이 회사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경우 방어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이사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중요하다면서 당국이 특정 안건을 올리도록 압박하는 셈"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내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상황에서 글로벌 의결권자문기관들에 금융지주 지배구조가 휘둘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금융사 고위관계자는 "회장 선임을 특별결의로 하는건 의결권 자문기관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특별결의 요건을 맞추려면 외국인 주주들의 동의가 필수적인데 국내 사정을 잘 모르는 해외 자문기관의 가이드라인에 좌지우지될 수 있단 의미다.
그간 금융지주의 '셀프 연임'이 관행화되고 이사회의 견제장치가 부실화되는 등 금융당국이 칼을 빼든 이유는 충분하다. 한 원로 금융권 관계자는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그렇더라도 상법에 따른 절차와 주주 가치를 지키는 선에서 지배구조 혁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