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청 신설,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벤특법) 제정, 1조40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구조개선 기금 조성,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 등 굵직한 중소기업 정책을 마련했다.
문민정부의 이같은 대대적인 '중소기업 육성 정책'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하지만 차기 국민의 정부 시절 중소기업과 벤처지원 정책이 활성화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검토 38일 만에 중소기업청 설립=김 전 대통령은 임기 4년 차에 접어든 1996년 1월 5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중소기업청 신설을 지시했다.
당시 중소기업수는 약 240만개. 당시 통상산업부(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중소기업국 한 곳에서만 이를 다루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이 검토를 지시한 지 38일만인 2월 12일 중기청을 신설했다.
중기청은 통상산업부의 외청이던 공업진흥청을 흡수해 과천 정부청사 본청과 지방조직까지 포함 943명의 인원을 가진 조직으로 발족했다. 당시 중소기업관련 7개 법률에 규정된 119개 통상산업부장관 권한 중 109개가 이관됐다. 출범 첫 해 예산은 3조2800억원이었다.
정부는 우수 인력을 일부 중기청으로 차출하기도 했다. 최홍건 전 공진청 차장이 중기청 차장으로 옮기고 중기청 내 10명의 국장급 중 재정경제원 통산부 2명, 총리실총무처 1명 등 4명도 중기청으로 왔다.
이후 중기청은 통상산업부와 함께 △중소기업 기본법(96년12월)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97년4월) △벤처기업육성에관한특별조치법(97년8월) 등을 제정하며 현재 중소기업지원정책의 토대를 닦았다.
◇'반쪽' 출범 비판도=중기청은 설립 초기 독립적인 지방 조직이나 독자적인 정책입안 및 집행기능을 갖추지 못해 '검토청', '옥상옥' 이라는 냉소적인 비판을 받았다.
특히 당시 몇 안되는 중소기업 지원 기관이던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을 중소기업청이 관리 및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무산됐다. 통상산업부와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간 알력 다툼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지방중기청 조직은 기존의 공진청의 지방 사무소를 '간판 바꿔 달기' 식으로 편입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중기청이 지방 조직을 중부권, 경인권 등 광역화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중기청 급속 설립'은 1995년 말부터 시작한 대선자금 공개 압박에 대한 국면 전환용 카드라는 해석도 제기했다. 9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견제하기 위해 급하게 추진했다는 분석도 있다. 당초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당이 '중기청 신설'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중기청 설립 과정에 참여했던 퇴직 공직자는 "중소기업계 숙원 사업이던 중기청 설립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진행돼 아쉬움이 있었다"며 "그럼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 후 중기청 육성정책의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어 정부조직 개편 등 후속조치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