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정된 인쇄용지에 대한 ‘우수재활용제품(GR) 품질인증제도’(이하 GR인증)에 대해 제지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개정된 GR인증이 일부 제지업체의 시장을 보호하는 특혜수단으로 전락할 소지가 높고 산림자원 보호에 방점을 둔 제도 도입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은 ‘인쇄용지(GR M 7002) 품질인증기준’을 개정, 해당 공장에 탈묵설비를 보유토록 명시한 ‘탈묵설비 관련규정’을 삭제했다. 탈묵설비란 폐지에 인쇄된 잉크를 빼내는 기계를 말한다. 이 기계로 탈묵과정을 거친 폐지는 탈묵재생펄프로 재탄생한다.
이번 개정은 그동안 GR인증이 없어 정부가 발주하는 검인정교과서 및 EBS교재 용지구매 입찰에 참여하지 못한 업체들에 입찰참여의 길을 터줬다는 점에서 얼핏 진일보한 내용처럼 보인다.
하지만 업계는 개정된 GR인증 기준이 오히려 기존 입찰구조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라고 반발한다. 탈묵처리해 재활용할 대상을 ‘국내산 폐지’로 제한해서다. 국내산 폐지로 GR인증 대상을 한정한 것은 현상황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지적이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검인정교과서 및 EBS교재용지 시장규모는 연간 8만톤(약 800억원) 수준인 교과서용지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4만톤 정도로 추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탈묵설비가 없는 제지업체들이 교과서 입찰에 참여하려면 탈묵설비를 보유한 업체에서 탈묵펄프를 사와 재활용 용지를 만들어야 한다”며 “폐지수급 불균형이 심화하는 경우 탈묵설비 미보유업체가 탈묵설비 보유업체의 처분만 바라봐야 해 또하나의 ‘갑을관계’가 형성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국내 제지업계는 폐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중국 때문에 폐지가격이 4개월새 30% 급등하는 등 ‘폐지대란’을 겪고 있다.
제지업계는 국내산 폐지의 정의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GR인증은 국내산 폐지에 사용된 펄프의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며 “국내 제지업체는 대부분 브라질 등 남미와 동남아에서 펄프를 수입해 종이를 만드는데 과연 이를 국내산으로 봐야 하는지도 논란거리”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탈묵펄프가 환경보호를 목적으로 한 GR인증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한다. 탈묵에서 쓰이는 각종 화학약품이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국내에서 자체 공장 내 또는 계열사를 통해 직간접으로 탈묵설비를 보유한 곳은 전주페이퍼 대한제지 등 신문용지업체와 한솔제지 세하 등이다. 반면 인쇄용지 전문업체 무림페이퍼 한국제지 홍원제지는 탈묵설비를 갖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