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하반기부터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허용하는 방향을 논의한다고 발표하면서 벤처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금도 지주사 체제가 아닌 대기업의 CVC와 벤처지주회사 설립은 가능하지만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를 통한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주사 산하의 CVC 허용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8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이하 공정거래법) 제8조의2에 따르면 지주회사 체제의 대기업은 CVC 설립이 금지된다. 공정거래법상 CVC가 금융업종으로 분류돼 대기업이 금융업을 겸업할 수 없는 '금산분리'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국내에서는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지 않은 삼성, 카카오, 한화 등 대기업이나 금융지주회사인 하나금융그룹 등만 CVC를 운영하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구조가 모기업과의 사업 시너지를 위한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지주회사 전환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입장과도 배치된다고 꼬집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CVC 관계자는 "지주사 산하가 아닌 특정 계열사 소속 투자사에서는 다른 계열사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CVC를 지주회사 산하에 설립해야 수많은 계열사를 총괄하면서 모기업의 다양한 사업과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2001년 CVC의 대안으로 '벤처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자회사 가운데 벤처기업의 주식가액 합계액이 50% 이상인 지주회사를 의미한다. CVC 대신 벤처지주회사를 설립해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오픈이노베이션을 하라는 권고다. 2018년에는 벤처지주회사 자산총액 기준을 50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축소하는 등 제도개선을 통한 제도 활성화도 추진했다.
하지만 여전히 VC나 CVC처럼 펀드 결성을 통한 타인자본 활용 투자가 불가능하고 투자기업에 대한 지분 20% 이상 보유 등 요건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나 M&A 등을 하기에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마저도 벤처지주회사 제도개선안은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벤처지주회사는 아직까지 단 한 곳도 설립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주회사 체제의 대기업은 SK와 LG 등 대기업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CVC를 설립하고 해외 스타트업·벤처기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을 모색하고 있다. '제2 벤처붐' 열기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오픈이노베이션'을 정부가 스스로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국내 규제대로라면 다양한 스타트업에 투자해 성과를 내고 있는 구글벤처스나 소프트뱅크벤처스도 CVC라는 이유로 불법이 된다"며 "CVC를 금산분리의 차원에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오픈이노베이션과 벤처에 대한 전략적 투자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