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인플루엔자) 백신의 ‘상온 노출’ 사고를 계기로 백신 관리 전반에 대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단순히 유통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백신 제조와 의료기관 보관 및 사용, 정부의 사후 관리까지 모든 과정이 엉망이었다.
향후 코로나19(COVID-19) 백신이 개발돼 공급될 때도 똑같은 문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구멍 난 백신 관리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질해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고 시급히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진다.
1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백신은 제조사에서 출고된 후 2~8℃에서 보관돼야 하지만 2018년 실시한 조사 결과, 콜드체인(냉장유통) 원칙을 지킨 의료기관은 86곳 중 26곳(3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상온 노출 사고 이전부터 백신이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보건소 39곳 중에서는 15곳(38.5%)만 적정 온도를 유지했고 동네의원·병원·종합병원 등 민간병원에서는 47곳 중 11곳(23.4%)만 콜드체인 원칙을 지켰다.
백신을 의료용이 아닌 가정용 냉장고에 보관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용 냉장고를 갖고 있더라도 성에가 끼는 등 청결유지를 지키지 못한 사례, 유효기간을 확인하지 않거나 유효기간이 지난 백신을 보관한 사례들도 적발됐다.
이번에 확인된 상온 노출 백신의 유통과정을 보면 백신 상자를 덩그러니 땅바닥에 놓거나 냉장차 화물칸을 활짝 열어놓고 상·하차 작업을 하는 등 관리부실이 심각했다. 지난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감자·고구마도 그렇게 운송하지 않는다”는 질타가 나왔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국민에 큰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계부처와 협력해 향후 백신 관리와 유통, 의료기관 내 안전관리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직후 또다시 백신 문제가 터졌다. 이번에는 ‘백색입자’ 논란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6일 지역 보건소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고도 9일이 되어서야 관련 사실을 공개했다. 이로 인해 7~9일 사이 6479명이 문제가 된 백신을 접종했다.
정부는 ‘백신 제조상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제조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잇단 백신 사고로 100만명 분량이 회수되면서 국내 백신 공급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정부는 업체와의 백신 조달계약 절차를 개선하고 백신보관 및 수송 가이드라인의 실행력을 높이는 한편, ‘백신관리 체계가 질병청-식약처-보건복지부로 나뉘어 있어 유통·관리에 혼선이 생긴다’는 지적을 수용해 이에 대한 개선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백신 관리 전반에 대한 개선작업과 함께 백신 관리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일선 의료기관들에 접종 중단 사실을 신속히 공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예년처럼 지난 7월에도 위탁의료기관들에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 관리지침’이 제공됐다. 하지만 지침에는 비상사태 발생 시 연락에 대한 규정이 없다”며 “신속한 전파가 이뤄져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