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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하는 딜을 쫓기보다, 산업의 밸류체인을 미리 그려놓고 빈 곳을 채울 요소기술 기업을 찾아 투자해 왔습니다. 그 프레임워크가 지금까지의 성과를 만든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경식 스틱벤처스 이사는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손꼽히는 기술 전문 심사역이다. 딥엑스, 포티투닷, 노타, 라이너 등 국내를 대표하는 딥테크 기업에 초기 단계에 잇달아 투자하며 선구안을 증명했다.
지난해 말에는 벤처창업진흥 유공으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이사는 "시리즈A 투자를 주로 진행했는데, 6~8년이 지나며 상당수 기업이 M&A(인수합병)되거나 회수 사이클에 진입했다"며 "회사가 성장하며 고용과 매출이 크게 늘어난 점이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이사는 공대 출신 엔지니어로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6년간 구매본부에서 근무했다. 대학 시절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다양한 기업을 가까이에서 접하다 보면 좋은 창업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구매본부를 택했다. 실제로 협력사들과 밀착해 일하며 산업의 밸류체인과 원가구조를 치열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후 사내에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역할을 하는 전략기술본부가 신설되면서 자연스럽게 투자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원래는 투자보다 사업 자체에 관심이 많았는데, 막상 투자 업무를 해보니 산업의 큰 그림을 그리며 투자하는 재미가 남달라 투자를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현대차 시절 그는 탑다운 리서치를 통해 스마트시티, 로봇 등 그룹의 미래 전략에 필수적인 기술기업들을 폭넓게 탐색했다. 이때 길러진 '산업 전반의 밸류체인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눈'은 현재 핵심 투자 포트폴리오를 발굴하는 밑바탕이 됐다. 그는 이후 신한은행 GIB에서 LP(출자자) 업무와 직접투자를 경험하고, CJ인베스트먼트를 거쳐 스틱벤처스에 합류했다.
그의 안목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트랙레코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딥엑스'다. 현대차 시절 처음 인연을 맺은 뒤 신한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투자를 집행했다. 투자 당시 딥엑스의 프리밸류는 120억원 수준이었으나, 시리즈D 라운드 유치 과정에서 평가받은 기업가치는 3조원을 넘기며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김 이사는 "당시만 해도 NPU(신경망처리장치)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고, 엔비디아 역시 지금처럼 압도적인 위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며 "초기 기업이었던 딥엑스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내부 설득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성공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투자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티투닷도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차 재직 시절부터 눈여겨보던 기업에 신한은행과 CJ인베스트먼트에서 연이어 투자했고 현대차그룹의 인수로 엑시트에 성공했다. 이 밖에도 에티포스, 페블스퀘어 등 밸류체인 분석을 통해 투자한 기업들이 그의 포트폴리오를 채우고 있다.
딥테크 기업을 발굴할 때 김 이사가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단순한 '기술력'이 아니다. 그는 "구매본부에서 기술을 사와 제품화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이 기술이 실제 제품으로 구현됐을 때 시장에서 어떤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는지와 창업진의 세일즈 역량을 집중적으로 본다"며 "기술 자체의 우수성보다 밸류체인의 공백을 정확히 메우거나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술 실사 역시 철저히 현장 중심으로 진행한다.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핵심 엔지니어와의 인터뷰와 기술 로드맵 분석은 물론 협업 기업과 연구기관 등을 통한 다각적인 레퍼런스 체크도 병행한다. 김 이사는 "진짜 검증 대상은 '이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누구에게 어떻게 팔 것인가' 하는 사업성"이라고 강조했다.
투자 이후에는 리스크 관리와 기업가치 제고에도 공을 들인다. 분기·반기별 점검을 기본으로 하되, 리드 투자 건의 경우 직접 이사회에 참여해 주요 경영 현안을 챙긴다. 또한 스틱인베스트먼트의 OPG(오퍼레이팅 그룹)와 연계해 지원한다. OPG는 스틱인베스트먼트가 2008년 설립한 기업가치 제고 전담 상근 자문 조직으로, 대기업 임원 출신 경영 전문가들이 피투자사의 경영 효율화와 주요 의사결정, 현장 모니터링 등을 지원한다.
김 이사는 장기적으로 AI 인프라 밸류체인에서 병목을 해소할 수 있는 기업을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칩 내부 단위부터 랙 투 랙(Rack to Rack)에 이르기까지 병목이 발생하는 지점을 찾아 이를 해결할 요소기술 기업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전방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밸류에이션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선점할 가치가 있는 영역이라고 보고 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의 이름을 대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대표 딜을 만드는 것이다. 김 이사는 "'이 회사는 김경식의 딜이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심사역이 되고 싶다"라며 "지금까지는 블라인드펀드를 통해 초기 투자에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발굴한 기업의 후속 라운드까지 지원하며 핵심 주주로서 기업과 동행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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