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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 스타트업으로 전 세계 벤처자금이 몰리는 가운데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스포츠 구단과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여행 등 '현실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AI가 쉽게 대체하거나 복제하기 어려운 자산과 경험에 베팅하는 이른바 'AI 역발상 투자'가 새로운 투자 전략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투자처가 스포츠다.
오픈AI와 데이터브릭스 등 글로벌 AI 기업에 투자해온 미국 VC 스라이브캐피탈은 지난 4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소수 지분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스라이브가 새롭게 만든 영구자본 투자기구 '스라이브 이터널'의 첫 투자처다. 스라이브 이터널은 스포츠 구단이나 문화기관처럼 AI로 복제하기 어려운 자산을 장기간 보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스라이브 캐피탈 창업자 조슈아 쿠슈너는 최근 스포츠 투자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에는 밥 아이거 전 월트디즈니컴퍼니 CEO(최고경영자)와 함께 미국프로농구(NBA) 명문 구단 로스앤젤레스(LA) 레이커스의 경영권 지분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거래에서 평가된 레이커스의 기업가치는 125억달러(16조8937억원)로 스포츠 구단 거래 사상 최고 수준이다. 거래가 마무리되면 쿠슈너와 아이거는 레이커스의 공동 구단주가 된다. 쿠슈너의 형은 재러드 쿠슈너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기도 하다.
빅테크 거물도 가세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에두아르도 세이버린 등과 함께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FC 지분 약 33% 인수를 추진하는 투자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거래에서 리버풀의 가치는 70억달러(약 9조46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됐다.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흐름을 두고 AI 모델이나 소프트웨어처럼 기술 변화에 따라 경쟁력이 빠르게 뒤집힐 수 있는 사업 대신 충성도 높은 팬덤과 희소성, 직접 체험해야 하는 경험을 가진 사업에 투자자들이 베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AI 확산으로 사람들이 화면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현실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란 판단도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스포츠 구단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희소성'이다. 인기 구단은 새롭게 만들어내기 어려운 데다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충성도 높은 팬층을 갖고 있다. 미디어 중계권과 티켓, 스폰서십, 상품 판매 등을 통해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AI의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도 어필 요소다. AI가 소프트웨어 개발부터 법률·금융 업무까지 빠르게 자동화하더라도 실제 선수가 뛰는 경기와 이를 현장에서 즐기는 팬들의 경험 자체를 대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종합격투기(MMA) 리그 프로페셔널 파이터스 리그(PFL)에 투자한 885캐피탈의 수딥 람나니 창업자는 "사람들은 실제 인간이 스포츠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며 "세상이 변화하는 방향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투자"라고 말했다.
투자 대상도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유명 스포츠 구단에서 신생 리그로 넓어지고 있다. 기존 프로스포츠가 장악하지 못한 틈새 종목에서 새로운 팬덤을 만들어내고 이를 하나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표적으로 미국 VC 레프트레인캐피탈은 지난해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이 공동 설립한 가족 친화형 레슬링 리그 '리얼 아메리칸 프리스타일(Real American Freestyle)'의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다. 레프트레인캐피탈은 프로 파델 리그 '프로 파델 리그(Pro Padel League)'를 비롯해 스노보드 스타 숀 화이트가 설립한 프로 겨울 스포츠 리그 '스노 리그(The Snow League)', 프로배구 리그 '리그 원 발리볼(League One Volleyball)' 등에도 투자했다.
할리 밀러 레프트레인캐피탈 창업자 겸 CEO는 "이런 사업은 실체가 있는 자산이고 쉽게 복제하기 어렵다"며 "1년 뒤 새로운 거대언어모델(LLM)이 등장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는 투기적 사업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스페이스X와 앤트로픽 등 인기 비상장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고 내세운 특수목적법인(SPV)이 급증하자 미국 금융당국이 실태 점검에 나섰다. 투자 대상으로 홍보한 기업의 주식이나 투자 권리를 실제 확보했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WSJ와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비상장기업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SPV 운용사에 대한 검사를 강화했다. SEC는 등록 투자자문사에 SPV가 투자 대상으로 내세운 비상장기업의 주식 보유 여부나 투자 권리를 입증할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SPV 관련 투자자 불만이 늘어난 가운데 스페이스X의 대형 기업공개(IPO)와 앤트로픽의 상장 추진을 앞두고 관련 투자 상품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검사는 주로 서류 제출 방식으로 진행되며 일부 운용사에는 현장 검사도 이뤄지고 있다.
SPV는 특정 투자를 위해 별도로 설립하는 투자기구다. 여러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비상장기업 주식을 직접 사거나 해당 기업 지분을 보유한 다른 펀드에 투자한다.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민간자본을 조달하며 비상장 상태로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유명 유니콘에 간접 투자하려는 수요를 흡수해왔다.
특히 AI 열풍으로 앤트로픽 등 비상장기업의 몸값이 치솟으면서 상장 전 투자 기회를 선점하려는 자금이 SPV 시장으로 몰렸다. 다만 다른 펀드나 SPV를 여러 단계 거치는 투자 구조도 적지 않아 최종 투자자가 어떤 주식이나 권리에 투자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상장기업들도 대응에 나섰다. 앤트로픽은 지난 5월 이사회 승인을 받지 않은 자사 주식 거래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SPV 등을 통해 자사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판매하는 일부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서도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스페이스X 투자 기회를 둘러싸고 사전 마케팅 적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6월 스페이스X IPO 공동 인수단에 참여해 공모주 청약을 신청했만 최종적으로 한 주도 배정받지 못했다. 앞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지난 4월 언론 인터뷰에서 스페이스X 공모주 물량이 상당할 것이라며 많은 투자자에게 투자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최종 물량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 기회를 적극적으로 알리며 투자자들의 기대를 높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계 최대 사이버보안 기업 팔로알토네트웍스가 설립 2년 만인 AI 스타트업 콘솔을 약 5억달러(약 6760억원)에 인수했다.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반복적인 IT(정보기술) 업무를 자동화하는 기술을 확보하고 '자율형 보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행보다.
테크크런치 등 IT 전문매체에 따르면 팔로알토네트웍스는 최근 현금과 주식을 합쳐 5억달러에 콘솔을 인수했다.
팔로알토네트웍스는 콘솔의 기술을 AI 기반 보안 플랫폼 '코텍스'에 통합할 계획이다. AI로 사이버 위협을 탐지·분석하는 코텍스에 콘솔의 AI 에이전트를 결합해 보안 담당자가 자연어로 지시하면 경고 조사부터 문제 해결까지 자동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니케시 아로라 팔로알토네트웍스 회장 겸 CEO는 콘솔의 기술이 코텍스에 "기업 전체에서 자율적인 보안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팔과 다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AI가 위협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후속 조치까지 수행하는 '자율형 보안'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2024년 설립된 콘솔은 AI 에이전트로 기업의 IT 지원 업무를 자동화하는 스타트업이다. 직원의 비밀번호를 재설정하거나 피그마·미로 등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의 접근 권한을 부여하고 반복적인 IT 장애를 해결하는 등의 업무를 사람의 개입 없이 처리한다. 램프, 플록세이프티, 스케일AI 등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콘솔은 설립 이후 두 차례 투자 라운드에서 총 2900만달러(약 392억원)를 조달했다. 피치북에 따르면 인수 직전 기업가치는 1억5700만달러(약 2122억원)로 평가됐다. 이번 인수가가 직전 기업가치의 3배를 웃돌면서 SV엔젤과 앱스트랙트벤처스 등 초기 투자자들도 설립 2년 만에 투자금 회수 기회를 얻게 됐다. 아로라 CEO 역시 개인 자격의 엔젤투자자로 콘솔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