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정부 관심밖 '중소조선소'

김지산 산업1부 차장 기자
2015.11.22 17:0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인 1998년 12월7일 김대중 대통령은 5대 재벌과 간담회를 갖고 7개 업종 빅딜 추진계획을 확정했다. 1년을 끌어온 삼성자동차 처리와 반도체를 놓고 벌여온 현대와 LG의 신경전에 마침표를 찍던 날이다.

전날 밤까지도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김우중 전경련 회장을 비롯해 5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과 막판 담판을 벌여야 했다.

정부 압박에 마지못해 빅딜에 합의할 때까지 선단식 경영에 익숙하던 우리 기업들은 주력과 비주력을 구분하지 않았다. 아니, 구분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재벌은 죽지 않는다는 이른바 '대마불사'의 시대였으니까.

구제금융을 빌미로 한 IMF의 종용이 주된 원인이긴 하지만 당시 신념과 의지만큼은 확고했다.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17년 전 옛 정부를 다시 떠올린 건 중소 조선사 통합논의 주체인 채권단과 정책금융기관 위에 있는 정부의 상황인식이 걱정돼서다. 현재 중소조선소 구조조정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을 부실덩어리로 분류한 STX조선과 합병할 수 없다고 산업은행 요구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선조선에 대해서도 회생 가능한 조선소라고 본다. 산업은행은 STX조선 청산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풍문이 퍼지고 우리은행은 SPP조선을 매물로 내놓았다.

SPP조선 같은 곳은 우리은행이 수주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며 청와대를 비롯해 닥치는 대로 민원을 넣는다. 우리은행은 매각가격을 높이기 위해 수주를 독려해도 모자를 판이지만 선수금환급보증(RG) 비용이 높아지면 훗날 귀찮은 일이 많아질 것을 우려한 것 같다.

STX조선을 깔아뭉개면서까지 성동조선을 생존 가능한 조선소라고 치켜세우면서도 삼성중공업에 정상화를 떠넘긴 수은 행태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채권금융기관이 조선소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건 중국 조선소들을 상대로 한 치킨게임에 해당 조선소들을 방치하는 행위다. 치킨게임의 결과가 오늘날 부실로 이어진 걸 모두가 목격했다. 기적적으로 중형선 선박 발주가 줄을 잇는다고 해도 저가 경쟁은 피하기 어려울뿐더러 물량도 제한적일 것이다.

통합 이후 제대로 강점을 보이는 선종을 내세워 수주 경쟁을 시켜도 쉽지 않은 게임이다. 통합논의가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게 된 배경인 채권단 이해충돌은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논의의 주도권을 잡고 최대한 손해를 덜 보는 쪽으로 진행하고 싶겠지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적어도 채권단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노력이라도 했어야 했다. 절충시키고 포기시키고 당근을 주는 중심축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1년 단위로, 짧으면 몇 개월 단위로 신문지면에는 '△△조선 추가지원 불가피' 같은 기사 제목이 뜰 것이다. 그리고는 채권단발로 '고강도 구조조정' '통합론 재부상' 기사가 뒤를 이을 것이다. 지루한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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