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주영 회장도 놀랄 100층 엘리베이터 제한

황시영 기자
2016.03.01 15:12

"설계자문을 저희가 맡고 있는데 최종 입찰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현대엘리베이터 임원)

105층 높이(56만611㎡) 현대자동차그룹 메인타워에 들어갈 엘리베이터 입찰을 두고 나온 이야기다.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고 현대엘리베이터가 엘리베이터 설계자문을 이미 진행 중이나 현대엘리베이터는 입찰 과정이 무난할지, 최종 낙찰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설계자문 서비스를 미리 제공해도 입찰에서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낙찰자 선정은 시공사도 할 수 있지만, 건물 전체 도면을 디자인하는 설계회사가 할 수도 있다. 가령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글로벌 설계회사가 처음부터 독일 티센크루프를 낙점하고 설계 도안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최근 101층 높이 부산해운대관광리조트(엘시티) 입찰에서 '크게' 당했다. 엘시티의 경우 시공사가 처음부터 100층 이상 설치 실적이 있는 업체로 입찰 제한을 두고 모터·감속기 등 중요 부품은 유럽산을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현대엘리베이터는 입찰조차 못할 뻔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기회를 달라고 부산시와 정부를 설득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가까스로 지난달 4일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입찰을 마쳤다. 입찰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국내 엘리베이터 업체들은 시공사들이 처음부터 '트랙 레코드(Track Record·시공 경험)' 규정을 내세우는 바람에 입찰 참여도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일본, 독일 등과 비교해 한국 엘리베이터가 기술력에서 뒤질 게 없다"며 "우리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써주고 지원하면 세계로 나가 돈을 많이 벌어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부 국내 엘리베이터 업체들은 오히려 기술력에서 외산에 앞서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부산국제금융센터(BIFC·66층)에 국내 최초로 분속 600m 승강기를 설치했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오히려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건물에 쓰인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는 작동 중 갑자기 멈춰서는 등 초기 오작동으로 인해 입주사 직원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해 봤어?"라는 화두로 유명한 정주영 고 현대 창업주의 말이 생각난다. 무조건 국내산만 옹호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술력이 비슷하다면 처음부터 기회는 똑같이 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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