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만에 재계 총수들을 한 자리에 모은 국정조사 청문회가 6일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가운데 과거 일해재단 청문회 당시와 대동소이한 모습이 펼쳐졌다.
1988년 11월 열렀던 5공 비리 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 고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5공 비리 청문회에서는 일해재단 출연이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다뤄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따 만든 일해재단이 '아웅산테러' 유족들을 돕겠다며 대기업들에게 강제모금했던 사건이다. 이번 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농단 국정조사에서 다뤄지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판박이다. 일해재단 당시에도 전경련이 수금 창구로 이용됐다.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류찬우 풍산금속 회장에게 "절대권력에게는 5년간 34억5000만원을 갖다주면서 안강공장 폭발사고 사망 노동자에게는 3000만원을 주니 안주니 싸우는 게 할 일이냐"며 질타했다. 6일 청문회에서는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모임 반올림을 언급하며 "삼성이 정유라에게는 300억원을 주면서, 고 황유미씨에게는 500만원을 내밀었다"고 질타했다.
5공 비리 청문회 당시 고 정주영 회장은 출연 의도를 묻는 질문에 "처음에 23억원은 부담 없이 냈고, 2차 모금에는 내는 게 맞겠다해서 냈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냥 내는 게 편하게 사는 길이겠거니 생각해서 냈다"고 답해 일부 의원들이 쓴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구본무 LG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등이 "기업이 청와대 요청을 거부하기 힘든 게 한국의 현실"이라며 입을 모았다.
6일 청문회에 나온 오너 기업인들 역시 28년 전 기업인들과 마찬가지로 정경유착 여부에 대해 집중 질문을 받았다. 과거 일해재단에 출연한 기업들이 관급공사 수주, 부실기업 인수시 혜택, 조세 특혜 등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었던 점과 유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히 삼성물산 합병, 한화와의 빅딜 등에 있어서 혜택을 입었는지 집중 추궁 당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면세점 사업 진출 및 제2롯데월드 특혜 의혹, 최태원 SK그룹 사면 특혜 등도 언급됐다.
일부 정치인의 저자세 응대도 입방아에 올랐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3인의 증인이 고령에 지병이 있다며 오후 시간에 미리 질의응답을 마친 뒤 귀가시키자고 주장했으나,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의 반대로 무산됐다.
28년 전 일부 의원들은 기업인들에게 "증인님"이라고 부르며,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청문회가 끝난 뒤 출입문을 열어주며 "회장님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포착돼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한편 6일 청문회에서는 개별 기업의 구체적 경영 사항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각 총수들에게 전경련 탈퇴를 종용하고,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해체를 요구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나라고 외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