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외부 기구에 의뢰·작성한 화학물질 정보공개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이르면 다음달 발표된다. 최근 반도체 직업병 관련, 사업장 정보공개 범위를 두고 사용자와 근로자간 갈등이 잇따른 가운데 이번 가이드라인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경감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1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옴부즈만위원회(이하 옴부즈만위원회)는 이르면 다음달 중 '삼성전자 화학물질 정보공개 규정과 안전보건 관련자료 보관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 가이드라인에는 화학물질 정보공개 관련 사내 규정, 안전보건 관련자료의 보관 기간, 화학물질 특성별 정보공개 범위 등이 담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따르더라도 근로자에게 중대한 건강 장해를 유발시키는 물질 1000여종은 이미 공개 대상이고 유해물질 사용 사업장은 반드시 안전보건자료(MSDS)를 만들어 비치토록 돼 있다.
옴부즈만 위원회가 이번에 발표할 가이드라인은 현행 법규보다 더욱 강화해 정보공개 범위가 더 넓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옴부즈만 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공개 포럼을 열고 '삼성전자는 동종업계의 선두주자이자 산업계 전반에서 미치는 영향력과 위상을 고려해 국내법상 영업비밀 제외 항목에 비포함된 물질이라도 공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각계 의견을 수렴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 이같은 목소리를 담았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면, 안전보건관련 자료 보관 기간도 현행 규정보다 늘어날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재 옴부즈만 위원회 내에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최종 검토 및 수정 작업을 거쳐 다음달 중으로 최종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내에서 반도체 직업병이 발생, 소송으로까지 이어질 때마다 논란이 됐던 문제 중 하나는 화학물질 정보공개의 범위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4년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근로자 이모씨의 유족이 고용노동부에 '(삼성전자)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를 청구한 것.
해당 보고서는 고용부가 작성한 것으로 공정간 배열, 생산라인 배치 설비 종류와 대수, 생산능력 등이 담겼는데 고용부는 당시 이 보고서가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공개치 않았고 이씨 유족들은 이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전고법에서는 개인정보를 제외한 전체 자료를 공개하라며 1심의 판결을 뒤집었다. 1심과 2심에서 보고서 내 내용이 영업기밀에 해당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의견이 갈릴 만큼 이는 항상 논란이 된 사안이다.
이밖에 기록 보관연수도 문제가 됐는데 현행법(기록물 종류에 따라 5~30년 등 다양)을 지켜 법정 저장 기한이 지나 폐기됐을 경우, 사용자의 은폐논란이 일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근로자의 알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기업의 영업 비밀 보호와 조화할 수 있는 규정의 근간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정보공개 논란이 일 때마다 해당 정보가 영업기밀에 해당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어 회사로서는 공개하는 데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며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정보공개 가이드라인이 마련된다면 업체와 근로자가 겪는 마찰이나 업계 혼란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에 국내에서 최초로 사회적 합의모델에 기반해 민간기업의 화학물질 정보공개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는데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이철수 옴부즈만 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가이드라인은 외부 전문가, 근로자 등의 의견을 수렴, 사회적 합의 모델에 기반한 것"이라며 "이같은 가이드라인은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할지라도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유사기업, 유사업종에서도 공신력이 존중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옴부즈만 위원회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질환문제 해결에 일조하고자 만들어진 독립기구다.
지난 2016년 1월,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원회,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재해예방대책에 관한 조정합의조항'에 합의함에 따라 출범했고 반도체 사업장 종합진단 및 예방대책을 강구하는데 활동 초점이 맞춰졌다.
이철수 서울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고 주제별로 총 2개 분과, 5개팀으로 구성됐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김헌 충북대 교수가 이끈 2분과 5팀이 1년여간 주도적으로 연구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