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R&D 투자 10조 '미래 전쟁'…100대 기업 1년새 7000억 더 썼다

심재현 기자
2018.05.18 05:30

매출 상위 100개사 1분기 연구개발에 9.9조 투입…"아마존·구글 따라잡으려면 정책 역행 말아야"

올해 1분기 매출 상위 100대 기업(공기업·지주사·금융사 제외)의 연구개발비가 10조원에 육박했다. 1년 전보다 7000억원 넘게 늘었다.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미래 먹거리 발굴과 기술 개발에 집중한 결과다.

◇ '반도체 호실적' AI·IoT 초격차 투자 확대= 17일 머니투데이가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기업별 분기보고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올 1분기 매출 기준 상위 100개사의 연구개발비 합계가 9조9570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9조2376억원)보다 7.8%(7194억원) 증가했다.

삼성전자연구개발비만 4조3359억원으로 1년새 4771억원(12.4%) 늘었다. 분기 기준으로 지난해 4분기(4조5757억원)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많다. 연초부터 이런 추세라면 연간 기준으로도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16조8056억원)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와삼성SDI(1535억원)·삼성전기(1221억원)·삼성SDS(307억원)·삼성물산(234억원)·삼성중공업(110억원)·삼성엔지니어링(11억원) 등 100대 기업에 든 삼성그룹 계열사의 연구개발비도 4조6777억원으로 2위인 LG그룹(1조8217억원)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반도체 슈퍼호황에 힘입은 호실적을 바탕으로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등 모든 사업부문에서 글로벌 초격차 전략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올 1분기 연구개발비를 12% 가까이 늘리면서 국내에서 640건, 미국에서 1495건의 특허를 추가로 취득했다"며 "반도체 신제품 개발과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분야의 원천기술 확보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됐다"고 밝혔다.

◇ 제약업계 신약개발에 매출 30% 투입= LG그룹에선 로봇·IoT 가전 연구가 활발한LG전자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대형화에 올인한LG디스플레이의 연구개발비가 각각 9025억원, 4891억원에 달했다. 평소 연구개발 투자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던LG유플러스(143억원)도 음성인식 AI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투자 규모를 20% 가까이 늘렸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지난해 1분기보다 189억원 늘어난 1조1165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 자율주행 등 자동차시장 패러다임을 바꿀 신기술 개발과 맞물려 글로벌 선두권 경쟁력을 확보한 수소전기차 품질 강화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SK그룹은SK하이닉스(6415억원)를 중심으로 7개 계열사에서 총 7961억원을 기술 개발에 투입했다. 연구개발비 증가폭이 7.4%로 4대 그룹 가운데 2위다.

4대 그룹 외 기업 중에선 국내 인터넷포탈 1위 네이버(NAVER)가 매출(1조3091억원)의 25% 이상(3296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 지도 제작 로봇 M1을 비롯해 자율주행차, AI 스피커 개발에 열중한 성적표다. 네이버는 올해 연간으로 3년 연속 1조원대 연구개발 투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카카오는 776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입했다.

매출 상위 100위권 밖으로 눈을 돌리면 최근 성장세가 가파른 제약·바이오업계의 연구개발 투자가 두드러진다. 업계 1위셀트리온은 분기 매출의 30.7%(753억원)를 신약 개발에 쏟아부었다. 지난해 1분기(422억원)보다 관련 투자를 80% 가까이 늘렸다.

한미약품과대웅제약도 각각 469억원(19.1%), 307억원(14.2%)으로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이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투자비 자체도 지난해 1분기보다 각각 25.7%, 20.4% 늘었다.

◇ 투자 공제 3분의 1토막…정책 역행= 4대 그룹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증가세를 보이지만 기업 전반의 여건은 글로벌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 한곳의 연구개발비 비중이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43%를 넘어선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나머지 99개사의 연구개발 투자 증가액이 고작 2400억원 남짓에 그친다.

상황이 이런데 기업의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은 오히려 뒷걸음치는 추세다. 국세청에 따르면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기업이 연구개발에 투자한 뒤 법인세 공제를 받는 비율이 2016년 신고(2015년 투자) 기준 4.0%로 2013년(13.5%)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3년부터 매년 대기업 대상 연구개발 투자 공제 감면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세법이 개정돼온 영향으로 풀이된다.

해외에선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기 위한 정책이 앞다퉈 나오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연구세액공제 공제율을 기업 매출 규모에 상관없이 14%에서 18% 인상했다. 영국은 2013년 기존 과세 대상 이익이 아니라 연구개발 지출액에서 직접 세약을 공제하는 방식의 제도를 도입했다.

재계 관계자는 "아마존이나 구글이 매분기 5조~7조원을 연구개발에 쏟아부을 수 있는 이유 가운데 정책적 배려를 빼놓을 수 없다"며 "고용과 성장률로 이어질 수 있는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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