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수도권 집중은 해묵은 과제다.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다. 청년들은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길 원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 취업에 유리하다. 그만큼 유능한 학생들이 몰린다. 오래 전부터 수도권에 터를 잡고 있던 대기업은 인재풀이 적은 지방으로 회사를 옮길 이유가 없다. 취업을 생각한 청년들은 수도권 대학에 몰린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인재 등용을 위한 '합리적 의사결정'으로 수도권에 터를 잡은 기업들을 무조건 비판할 수 없다. 하지만 국토의 균형발전의 측면에서 보면 상황이 다르다. 상호출자제한기업(대기업집단) 소속회사 중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는 곳의 비율만 74.1%에 이른다. 인력과 자산의 수도권 집중은 국토의 불균형 발전을 부추기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 2015년의 GRDP, 그 때부터였다
통계청의 '지역소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명목 지역내총생산(GRDP)은 1936조403억원이다. 이 중 수도권의 GRDP는 1017조407억(52.5%)이다. 수도권의 GRDP는 2015년 처음으로 비수도권의 GRDP를 추월했다. 2004년에만 하더라도 비수도권의 GRDP 비율이 51.5%로 더 높았다. 2015년 역전된 GRDP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비교적 최근 설립된 플랫폼 기업들이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정착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은 더 심해졌다. 수도권에 일자리가 집중되자 청년들은 경쟁에 내몰렸다. 감사원은 지난해 발표한 감사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초저출산과 지방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수도권 집중, 그로 인한 높은 인구밀도와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들에 세금 혜택을 주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배호영 KBIZ중소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수도권 기업의 지방이전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며 "지방 대기업이 수도권으로 이전하면서 중소기업까지 함께 옮길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기업들의 지방이전을 지원하기 위한 세금 혜택은 '체리피커'만 양산하기도 했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수도권 밖으로 본사를 옮기는 기업은 7년 동안 법인세 전액을 감면받는다. 이후 3년 동안에도 법인세를 절반만 내면 된다. 하지만 특정기업이 전체 감면액 중 83%를 독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방으로 옮겨간 본사의 근무자가 10명이 채 되지 않는 곳도 많았다.
■ 한국은 왜 지역기업이 크지 못할까
따라서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뿐 아니라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학과 교수는 "현재 지방이전 인센티브가 향하고 있는 대상은 기업"이라며 "기업만 내려가면 당연히 직원도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들을 위한 인센티브를 함께 묶어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2본사를 활성화하자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미국의 경우 아마존이 제2본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히자 유치전이 펼쳐졌다. 이를 위해선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법인세 혜택만 하더라도 국세이기 때문에 지자체의 역할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 같은 지역 대표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지만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포틀랜드의 나이키 본사처럼 거대기업들이 거점을 유지하고 살리는 경우가 있다"며 "인재들이 몰릴 수 있는 인프라나 주거 환경이 갖춰져 있기 때문인데 한국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포스코그룹이 다음달 2일 출범하는 포스코홀딩스(지주회사) 본사를 서울이 아닌 경북 포항시에 두기로 결정했다. 지주사 설립과 함께 신설되는 포스코(POSCO)의 미래기술연구원도 포항지역을 중심으로 운영키로 했다. 포스코 입장에선 어렵게 기존 입장을 바꿔 결단을 내린 만큼 포항시도 포스코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안팎에선 기업들이 인프라 측면에서 월등한 서울 등 수도권에 본사나 연구소를 둘 수밖에 없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특히 회계나 법률, 연구개발, 해외시장 등 각 분야 핵심 인력들은 대부분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직이 잦은 최고급 인재들을 영입하는데 있어서도 근무지가 수도권을 벗어나면 불리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 한 경영대 교수는 "글로벌 기업을 이끌어갈 경영진에 걸맞은 인재들은 아무래도 수도권을 떠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아마존 같은 해외의 지역 대표기업 본사들을 보면 해당 지역에서 경영상 필요한 요건들이 갖춰져 굳이 대도시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포스코도 지주사 본사 주소지를 서울로 결정했던 배경에 대해 같은 맥락으로 설명했다. 한 포스코 관계자는 "철강 외에도 에너지 등 다양한 글로벌 사업을 하고 있었고, 원래 지주사 기능도 서울사무소에서 해왔다"며 "무엇보다 다양한 사업분야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주요 인재들을 구하기에도 서울 등 수도권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업장을 가진 포스코 사업회사의 소재지가 그대로 포항이고, 사실상 지주사 기능을 수행했던 포스코 서울조직 인력 200명 안팎이 지주사로 이동하는 것으로, 지역 경제에 악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지역의 우려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 등 주요 대선 주자들이 지역민심을 잡기 위해 앞다퉈 나서면서 이사회와 주주총회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나온 기업의 의사결정이 뒤집혔다.
대도시 지위가 흔들릴 정도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포항시는 포스코의 지주사 본사 주소지 선회를 반기는 분위기다. 27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포항시 총 인구수는 50만3404명으로 파악된다. 2014년 51만9000명대로 52만명을 밑돈 이후 인구가 다시 감소했다. 총 인구수 50만명은 지방자치법상 대도시의 기준이 된다. 한 마디로 포항시는 아슬아슬하게 대도시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 기간 줄어든 인구 대부분이 30대로 파악되는 등 청년인구 유출이 심각하다. 그만큼 포스코에 더욱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기업의 주요 투자를 결정하는 지주사 본사가 포항에 있어야 자연스럽게 지역투자를 늘려 일자리가 생기고, 인구도 늘고, 지역경제에 선순환이 이뤄진다"면서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대기업을 유치하려는 이유도 결국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