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역통상환경의 급변 속에 한국무역의 안전판이 약해진다. 지난해 글로벌 IT 경기 위축으로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고, 최대 시장인 중국에 대한 수출도 줄면서 수교 31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한국무역의 양대 버팀목인 반도체와 중국이 동시에 흔들린 결과다. 특히 대중 수출은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더라도 그동안의 교역구조가 지속되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이 높아진다.
수교 후 30여년간 한·중 교역은 서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보완구조를 발전시켜 왔다. 중국은 세계 수입시장 2위 규모로 성장하면서 한국의 좋은 수요처가 됐다. 산업협력 파트너로서 한국산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조립을 거친 후 완제품을 전 세계에 수출하는 협력관계가 유지됐다. 반도체를 비롯한 중간재는 대중 교역에서 흑자를 기록하며 한국무역이 흑자기조를 이어가는 일등 공신이 됐다. 그러나 중국의 산업경쟁력 강화로 제조업 자급률과 수출 자립도가 오르고 경기둔화와 미국의 대중 압력으로 중국의 수입 수요가 감소하면서 지금까지의 교역구조가 유효기간을 다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5년간 중국의 수출 자립도는 기계류, 화학공업, 플라스틱 등에서 크게 높아졌다. 특히 배터리, 석유화학 등이 포함된 화학공업 제품의 경우 이제는 수입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그 결과 지난해 중국의 대한(對韓) 수입 상위 20 품목 중 13개 품목의 시장 점유율이 하락했으며, 이러한 하락분은 중국 내수기업과 함께 아세안, 일본, 미국, 대만이 가져갔다. 반도체를 제외하고 우리 제품의 전반적인 대중 수출경쟁력이 떨어진 것이다.
아울러 중국 경제의 성장둔화로 한국, 일본 등 제조업 중심 국가로부터의 수입 감소가 두드러지고 수입 규모가 가장 큰 중간재 수입 비중도 50% 이하로 떨어진다. 또 미국의 압박으로 중국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감소하고 현지 진출 기업들의 탈 중국 현상이 나타나면서 외국인 투자기업을 목적지로 하는 수출도 감소하고 있다. 한 마디로 시장으로서의 중국, 산업협력 파트너로서의 중국이라는 양대 축이 모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무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글로벌 사우스'를 비롯한 새로운 시장을 주목하고 차세대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신성장 산업 투자를 강화하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세계 두 번째 수입시장이자 여전히 글로벌 밸류체인의 거점 역할을 수행하는 중국을 배제한 다변화·다각화 논의는 한국무역의 기반 자체를 흔드는 위험한 시도다.
호혜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중 교역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하고 이를 실현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 수입시장의 고부가가치화에 대응해 하이테크 기계장비와 차세대 IT 품목 등 첨단기술 제품 위주의 수출구조를 갖춰야 한다. 또 탄소중립 등 신(新)SOC 분야 인프라 투자 확대에 대응한 진출과 수소, 디지털 등 새로운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의 협업모델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한·중 교역의 새로운 30년을 선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