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미 동맹의 진화: 안보를 넘어 경제·기술 동맹으로

정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2025.09.03 09:12

"동행만리"(同行萬里)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같이하면 만 리 길도 함께 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한미 동맹은 지난 70년간 군사 안보를 중심으로 함께 걸어왔지만, 이제 그 길은 단순한 안보의 길을 넘어 경제와 기술을 아우르는 더 넓은 미래의 길로 이어진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바로 그 전환점의 시작을 알렸다.

최근 타결된 한미 통상협상은 예고된 25% 관세를 15%로 낮추며 불확실성을 완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철강과 알루미늄 등 일부 품목에는 고율 관세가 남아 있다.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 기회와 도전이 동시에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 회담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단순히 통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미 양국은 공급망 재설계, 첨단 기술 공동 개발, 인재 육성 등 경제 안보 전반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논의했다. 특히 한국의 조선, 반도체, 배터리 산업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안보와 직결된 전략 산업 협력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크다.

정상 회담 직후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양국 대표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와 협력 계획을 공유했다. 반도체, 바이오, 조선, 원자력, AI 등 다양한 산업 협력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양국 간 산업 협력은 기업들의 지원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이 제안한 조선 프로젝트가 본격 추진된다면, 한미 협력은 단순한 민간 투자를 넘어 전략 산업 동맹의 상징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낙관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일부 산업에 여전히 높은 관세가 남아 있고, 대규모 투자에 따른 거버넌스 부담도 풀어야 할 과제다. 더구나 정상회담 직후,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한 장비 반입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미 통상 협상 타결과 정상회담을 통해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될 것으로 예상했던 우리 기업들로서는 추가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의 통상 정책 수장인 제이미슨 그리어가 명명한 '턴베리 체제'나 트럼프 라운드 이후의 세계 질서는 과거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직시하고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은 핵심 중간재에 대해 무관세 할당관세 확보를 요구하는 한편, 이미 약속한 현지 투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또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 산업에서는 공동 연구개발, 인력 재훈련, AI와 같은 국제 표준을 선도하는 것이 시급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탄탄한 준비와 실행이 뒷받침될 때 동맹은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한미 정상 회담은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미는 단순한 안보 파트너를 넘어 경제와 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국제 질서를 함께 써 내려갈 동반자로 자리매김했다. 자유무역으로 성장해온 한국에게 이는 도전이지만, 동시에 경제 동맹과 기술 동맹으로의 진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기반과 기회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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