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는 대통령, 무섭다는 회장들…왜?

박종진 기자
2025.12.11 04:11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벌써 10번가량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의 총수와 각종 행사 등에서 얼굴을 맞댄 횟수다. 재계에 따르면 3년 가까이 집권했던 전임 윤석열 정부 내내 대통령과 만났던 빈도와 이미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한 지 이제 6개월 지났다. 친기업을 전면에 내세운 보수 정권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접촉했다는 얘기다. 오너와 이 정도라면 사장·임원급과는 말할 필요도 없다.

#소통은 잦은데 상대는 난색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이재용·최태원·정의선·구광모 등을 포함한 7개 그룹 회장단과 회동을 갖고 "정례적으로 만나자"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실제 대통령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추진하는데 '진심'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문제는 정작 기업들은 이를 두려워한다. 재계에서는 진짜 회동이 정례화 될까 봐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속사정을 들어보니 꽤나 우려스럽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회장들의 일정 조율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둘째로 치고 만날 때마다 내놔야 하는 '무언가'는 공포 그 이상이다. 지난달 회동 직후 각 그룹들은 일제히 역대급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 450조원, 현대차 125조원 등 그야말로 천문학적 규모였다. 정교해야 할 기업의 로드맵이 아닌 정권의 요구에 따른 급조된 숫자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경제 활성화를 염원하는 이해관계자들의 바람 속에 모두가 이를 묵인했을 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뭐든 도움이 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안 그러니 기가 막힌다. 지원은커녕 발목을 잡는다. 대통령이 첨단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규제나 금산분리 관련 제한을 다소 풀어주려고 해도 행정부에서 엇박자가 난다. 비록 규제완화로 가닥은 잡혔다지만 그 과정에서 교수 출신 주무부처 장관이 '민원'이라고 냉랭한 반응을 보였던 건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필요한 민원이면 발 벗고 나서 도와야 하는 건 아닌지, 그게 정부의 존재 이유가 아니냐는 반문을 낳는다.

입법부를 바라보면 더 절망적이다. 기업들이 결사 반대했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부터 상법 개정안까지 강행처리를 몰아치더니 정작 반도체특별법처럼 간절히 바랐던 안들은 한참을 시간 끌다가 그나마 '52시간 예외'와 같은 핵심 조항은 빼고서 진행하고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 기업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어떤 그룹은 2인자를 교체했고 또 어떤 그룹은 주력 사업의 수장을 갈아치웠다. 재계에서는 내년이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근 주가 상승과 펀더멘털(근본적 경쟁력) 강화는 별개란 얘기다.

수출 착시 현상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지난달까지 누적 수출액은 6402억 달러로 사상 첫 연간 7000억 달러 돌파가 유력하다. 그러나 AI(인공지능) 초호황기를 맞은 반도체 부문을 제외하면 상황은 전혀 딴 판이다. 반도체를 뺀 수출은 오히려 1.5% 줄었다. 15대 주요 품목 중 10개 품목이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이 와중에 기업들은 정치권 눈치까지 봐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터라 투자계획 발표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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