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자사주 소각 의무화' 주식시장 활성화 해법 아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
2025.12.11 04:13

한국 기업의 주식시장 가치는 유사한 해외기업보다 낮을 뿐 아니라 주가총액이 순자산 장부가치보다도 적은 경우가 많다.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자사주 취득 후 1년 이내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주식시장 활성화에 적절한 정책이 아니라고 본다. 주식 저평가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지 못하고 저평가를 중장기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가는 회사의 가치를 반영하게 돼 있다. 가치를 환산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첫째는 회사가 보유한 자산의 순처분가치이고 두 번째는 예상되는 미래수익을 현재가치화한 금액이다. 이 경우 미래수익에 대한 기대가 변하면 주식의 가치도 변한다. 현재 회사의 자산가치가 낮아도 미래 수익 기대가 높으면 주가총액은 자산가치를 넘을 수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경우가 이렇다.

반면 주가총액이 자산 처분가치 이하가 된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회사가 미래에 수익을 얻기보다 손실을 볼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것이다. 즉 경영진이 수익을 낼 것이라는 데 신뢰가 없는 것이다.

영미권 기업들은 투자자들의 기대를 높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주주들과 소통하며 기업의 비전과 목표 등을 발표하고 투자자들을 설득하려 한다. 반면 한국 기업은 경영진의 노력이 투자자 신뢰 제고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아 투자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면이 있다. 신뢰 저하 상태에서 투자자는 장기적인 밸류 주식투자보다 가격추세를 따르며 수익을 얻으려는 높은 리스크의 단기적 투자에 집중한다.

이같은 환경에서 자사주 의무소각 제도를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소각은 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올리려는 전략이다. 기업의 총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가치를 더 적은 주식에 나눠 주가를 올리는 방식이다.

이번 발의안은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의 자사주 보유의 길은 열어뒀지만 이를 위해선 까다로운 정관 변경(주주총회 특별결의)이 필요해 급변하는 환경에서 기업이 적기에 대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사주를 활용하지 못하고 소각하게 되면 미래 투자 여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기업가치 상승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주식소각으로 회사의 자산을 낭비하는 것보다 이 주식가치를 활용한 유망한 투자를 통해 미래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 가치 창출에 바람직하다. 단, 이러한 미래지향적 전략을 취하려면 경영진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또 행동으로 주주들의 이익을 높여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경영진의 비전과 전략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기업의 투자가 증가하는 만큼 미래 예상수익과 주가총액이 늘 것이다.

경영진의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사주 의무소각을 법으로 규정해 단기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더라도 실제 투자와 수익성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기업의 총가치는 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가치와 주가는 모두 하락할 수밖에 없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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