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비주류'(非酒類) 사회②술도 사람도 없는 먹자골목...'고요한 번화가'

# 지난 9일 오후 8시30분 서울 마포구 합정동 5번 출구 인근의 한 퓨전 한식 포차. 열댓개가 넘는 테이블 가운데 손님이 앉은 테이블은 단 3개뿐이었다. 카운터에 앉은 40대 사장은 "요즘은 포스기 화면보다 휴대폰 뱅킹 앱(애플리케이션)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시간 인근 다른 주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평일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거리는 지나치게 고요했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 중 식당이나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뜸했다. 그나마 한 펍(pub·선술집)에만 야구 경기를 보러 모여든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젊은이들의 성지 홍대 레드로드의 활기도 예전 같지 않았다. 클럽이 밀집한 거리는 그나마 인파가 있었지만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주류 소비보단 패션·뷰티 쇼핑에 더 관심을 가지면서 로드숍만 인산인해를 이뤘다. 바로 앞 텅 빈 포장마차와 주점 내부가 대조적이었다.

술을 마시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었다. 술집에선 '폭탄주'를 마시기 위해 소주나 맥주를 연이어 주문하기보다 하이볼이나 칵테일처럼 도수가 낮은 주류를 한 잔씩만 시켜두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 프랜차이즈 주점 업주는 "예전에는 테이블당 소주 3~4병은 기본이었는데 요즘은 맥주 한두 잔 정도만 마시고 가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회식 장소로 많이 찾는 서울 종각 등 종로 일대도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7일 밤 9시쯤 찾은 종각 주변엔 문을 닫은 식당들이 눈에 띄었고 술집 내부는 비교적 한산했다. 반면 인근 아이스크림 전문점엔 손님들이 줄지어 들어가며 상반된 풍경이 연출됐다.
몇 년 전만 해도 저녁 회식을 하는 직장인들로 가득 찼던 이곳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젊음의 거리'란 이름이 무색하게 대학생 등 젊은 층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호객하는 직원들만 눈에 띄었다.

인근 한 고깃집 관계자는 "예전에는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들로 가게가 가득 찼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다"며 "밤 9시만 넘어도 거리가 한산해지고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종로구 무교동의 한 복요리 전문점 관계자도 "요즘 저녁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고 술을 마시러 오는 사람들도 하루 3~4팀 수준"이라고 전했다.
가격 부담과 음주 문화 변화가 맞물리면서 이처럼 술집을 찾는 발길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소주 한 병 가격이 6000원을 넘고 안주까지 더하면 2만~3만원이 훌쩍 넘는 구조가 일반화되면서 '가볍게 한잔'의 진입 장벽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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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자체에 대한 인식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술자리가 인간관계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기보다 개인 시간과 건강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회식이 감소하는 문화와 대학가 모임 축소까지 겹치며 '비주류(非酒類) 사회'가 주류가 되는 중이다.

실제 통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확인된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호프·간이주점' 수는 2023년 1만8412곳에서 지난해 1만5580곳으로 감소해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 기준 서비스업 생산지수에서도 주점업은 지난해 말 기준 전년 대비 3.1% 감소하며 역성장했다.
주류 소비가 줄어들면서 외식업계의 양극화가 뚜렷해지는 현상도 목격된다. 주류 판매 비중이 높은 포차나 소규모 자영업 식당은 매출 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고급 레스토랑들만 장사가 잘된다. 고가의 와인이나 일품진로 같은 프리미엄 주류를 페어링해 일반 주류 매출 감소분을 보완하고 에이드류 등으로 음료 매출을 강화하는 식이다.
요리주점을 운영하는 30대 자영업자 이강현씨는 "예전에는 혼자 가게를 차리는 게 목표였지만 지금은 업황 자체가 불안정해 1인 창업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동업을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성공도 불투명하고 개인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