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황이 점점 악화돼 갑니다."
"종전 언급이 그래도 있을 줄 알았는데, 큰일 났네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 직후 정유·화학기업들 사이에서 나온 우려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2~3주 동안 이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겠다"며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경고했다. 이달들어 어느 정도 풀릴줄 알았던 '이란발 불확실성'이 오히려 증폭됐다는 분석에 힘이 실렸다.
국내 산업계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쟁 종료와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오락가락하면서 3주 뒤 종전이 과연 이뤄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하는 국가들이 알아서 책임을 져라"고 언급했다. 미군이 철수를 결정한다고 해서 이란 측이 원유와 나프타가 지나가는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열어줄지 확신할 수 없는 셈이다.
일단 유가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일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 1일 보고서를 통해 "이른 시일 내 (이란에서) 전투가 종료되더라도 유가는 전쟁 이전보다 35∼43%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며 "자유로운 항행 제한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할 것이고, 이 수준이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유사 입장에서도 반길 상황이 아니다. 이미 원유 수급 불확실성 확대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아랍 라이트(경질유) 5월 인도분 OSP(공식판매가격) 프리미엄이 배럴당 40달러로 역대 최고 수준에 달할 전망이다. 아랍 라이트는 아시아 정유사들이 널리 도입하는 대표 유종이어서 다른 유종도 전반적으로 큰 폭의 상향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원가와 수급 모두가 부담인 환경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화학업계의 경우 '나프타 대란'에 직면해있다. 일단 국내 화학사들은 정부의 수출제한, 러시아 등 대체 수급처 확보, 가동률 하향조정, 일부 시설 셧다운 등의 조치를 통해 최소 4월말까지 버틸 수 있는 나프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 화학사들은 공장 가동률 60~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 수치가 50~60%대로 떨어진다면 공장을 돌리는 비용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나프타 대란'이 현실화될 경우 전자와 자동차, 유통 등 전방 산업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단 정부와 업계는 향후 시장 변화에 대비해 공동 대응 체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공급 차질 발생 가능성에 선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은 미국은 물론 인도·아프리카 등 나프타 대체 수급처 확보에 총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이란 사태를 기점으로 고유가와 중동 중심 공급망 불안 등을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베트남 등에 원유 광구를 보유한 SK어스온과 같은 자원 개발 기업, 태양광 사업을 영위하는 한화솔루션, 원전 기자재 시장의 강자인 두산에너빌리티 등과 같은 기업의 전략적 가치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이란 사태 이전 시대로 돌아가려면 긴 시간 동안의 정치외교적 변화가 선행돼야하다"면서 "공급처 다변화, 에너지 포트폴리오 조정 등 새로운 시장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